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인간은 어느 날 던져진 존재

by 현월안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고 오가는 질문이 있다. "MBTI가 뭐예요?" 그 이전에는 혈액형이었고, 그보다 더 전에는 별자리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분류하고 이해하려 애쓴다. MBTI는 에너지의 방향을 기준으로 외향적인 E와 내향적인 I를 나누고, 몇 가지 성향의 조합으로 재미있게 설명한다. 그 호기심과 재미를 주는 것 때문에 기꺼이 그 틀 안으로 들어간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산다. 외모와 체형이 다르고, 성격과 기질은 더더욱 제각각이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MBTI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나 재미를 너머 선다. 어쩌면 그것은 다른 이를 알고 싶고 그리고 또 나 자신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 갈증일지도 모른다. 나와 잘 맞는 사람, 나를 덜 아프게 할 관계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수학 공식처럼 명확히 정의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만약 인간의 성향과 미래가 몇 가지 유형으로 완벽히 설명될 수 있었다면, 오랜 세월 이어온 수많은 직업과 학문은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정신 상담도, 심리 상담도 지금처럼 사람 곁에 머물지 못했을지 모른다.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은 사실 놀랄 만큼 나약하다. 한 치 앞도 모를 뿐 아니라, 종종 나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는 누구인가.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흔히 말하는 나라는 존재는 대부분 생물학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 모습이다. 가족 안에서의 나와 직장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 명함 위에 적힌 직함과 역할을 벗겨낸 상태의 나를 떠올리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사람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얼굴을 자신의 본모습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그리고는 더 그럴듯한 명함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무엇을 가졌는지, 어디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고 관계의 온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빈 곳간을 채우듯, 끊임없이 무언가를 쌓아 올린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시기를 선택해 떠날 수도 없다. 어느 날 문득 이 세상에 던져져,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그 삶에는 분명한 책임이 따른다. 삶의 조건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저마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은 세상을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라고 수 없이 권한다. 전부라고 믿었던 몸과 마음과 명예와 부, 관계와 역할조차 결국은 흩어진다. 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실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 허탈하면서도 또 조금은 가벼워짐을 느낀다. 끊임없는 앎을 통해 나를 탐구할 때,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속박에서도 한 발 비켜설 수 있다고 철학자들은 말한다.



사실, 사는 일은 늘 바쁘다. 관계를 지켜야 하고 책임을 다하고, 하루를 무사히 건너는 것만으로도 삶은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멈춰 서서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누구로 살고 있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어떤 존재로 기억하고 있는가.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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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달력은 새것으로 바뀌었고 마음은 묘하게 새로워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아직 분명한 답은 없지만, 그래도 질문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새해의 새 마음으로, 내 삶의 주변을 단단히 여미며. 관계 속에서 더 많이 사랑하고, 내가 조금 더 유해지기를 바라며. 그렇게 다시, 나를 아는 것부터 새 해 발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