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소식은 예고 없이
슬픈 소식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던 지인의 부고 소식이다. 바로 한 주 전, 몇몇 지인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을 때만 해도 그녀는 놀랄 만큼 평온해 보였다. 통증이 얼마나 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고 견딜만해요라고 말했던 그녀다. 살이 빠질 대로 다 빠진 몸과 눈이 총총했던 얼굴에는 담담함이 들어 있었다. 말기암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에 비해 그의 표정은 너무나 고요해서, 함께 간 사람들은 조금 안심을 했고, 마음 한편으로는 희망을 품고 병실을 나섰다.
삶은 짐작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가 찾아간 그다음 날부터 그녀는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위기는 몇 차례나 반복되었다고 했다. 암치료 병동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던 계획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선고받은 시간은 6개월이었지만, 그녀는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더 살아냈다. 연명이 아니라 의지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흰 국화 한 송이를 놓고 기도를 하고 그녀의 두 딸을 보는 순간 어금니를 꼭 물고 내 정신을 붙들었다. 그런데 낮에 부고를 전해준 이를 마주하는 순간, 그제야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어떤 때는 눈물이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서로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며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지금 중년을 향해 가는 나이이고 떠나기에는 너무 젊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진하게 쓰던 사람. 말투만큼이나 삶의 태도에도 엄격했고, 먹는 것 하나, 행동하는 것 하나 허투루 선택하지 않던 사람.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반듯한 선비'라고 불렀다. 아직 대학생인 딸 둘과 남편을 남겨두고 그는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그 질문은 쉽게 끝나지 않는 문장처럼 마음에 남았다.
한밤중에 장례식장을 나서며 나는 오래된 질문 앞에 다시 생각이 멈췄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른 말들이 넘쳐나고, 온갖 이해관계가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이 세상은 때로 허깨비처럼 느껴진다. 진실은 거짓 속에 가려지고, 의미보다 속도가 우선인 날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너무 바쁜 세상이고, 때론 중요한 것을 뒤로 미룬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한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본질을 묻게 된다.
그는 화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대신 단정했고, 소란스럽지 않았으며, 자기 삶의 기준이 분명했다. 그 기준은 남을 평가하기 위한 잣대가 아니라, 자신을 다잡기 위한 약속에 가까웠다. 아마도 그가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절제된 말과 단정했던 삶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떠난 사람. 그래서 그의 부재는 더 크게 느껴진다. 세상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한 사람의 세상은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그 무엇도 그 이상도 아닐지도 모른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하루를 견디는 것.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 진실이 있다. 조금 덜 속이고, 조금 덜 욕심내고, 조금 더 귀하게 여기는 것. 끝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소유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건너왔는가 하는 기억뿐일 것이다.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단단했다. 아마 그래서 떠난 뒤에도 이렇게 오래 마음을 붙잡는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의 생각 속에 머무를 수 있는 모습을 남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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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질문이고 살아야 하는 의미가 된다. 살아 있다는 것은 뭘까. 그 물음 앞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어 본다. 떠나간 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이었나? 그녀를 떠올리며 그렇게 하루를 또다시 붙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