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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이 열흘 정도 남은 어느 날 아침, 교보문고를 찾아갔었다. 3년째 써온 다이어리가 마침 20% 세일을 하고 있었다. 2013년은 파랑, 2014년은 빨강, 2015년은 파랑이었다. 2016년은 어떤 색을 고를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오렌지색, 갈색처럼 한 번도 고르지 않은 색으로 사려다가 결국 빨강과 파랑 사이에서 손이 머뭇거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일단 두 권을 모두 샀다. 영수증을 버려드릴지 묻는 종업원의 말에 평소처럼 '네'라고 답하려다 다시 영수증을 챙겼다. 둘 중에 한 권은 환불하리라 다짐하고 서점을 나왔다. 돌이켜보니 나중에 다시 와서 사면될 일이었지만 20% 세일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그 당시에도 두 권의 일기장을 어떻게 활용해보려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열흘은 환불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어느덧 1월 1일을 기록해야 할 시간이 왔다.
비닐이 그대로 씌워진 두 일기장을 앞에 놓고 무엇을 뜯을지 고민하며 손가락으로 비닐만 그어대다가 둘 다 뜯어버렸다. 둘 다 써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비닐을 뜯은 뒤였다. 한 권은 그날 있었던 사실들을 적고, 다른 한 권은 그날 떠오른 생각들을 적기로 했다. 그동안의 일기는 바쁘게 지낸 날은 사실 위주로 적고, 조금 한가했던 날은 생각을 적다 보니 통일성이 없었다. 어차피 혼자 보는 일기장인데 거기에 통일성이 뭐가 문제겠냐만은 두 권을 쓰려고 마음먹으니 그마저도 문제로 보였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는 심각한 오류로 여겨졌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일기장에 통일성이 없어? 그렇게 1년을 다 쓰면 지구가 멸망하는 거 아니야? 지구 떠나고 싶냐 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기는 두 권으로 나눠 써야만 했다. 1년 치 의욕을 끌어 쓰는 1월 1일에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이제 빨간 일기장과 파란 일기장에 어떤 글들을 담을지 정해야 했다. 그 순간 바로 떠오른 생각. '어 이거 완전 매트릭스 아니야?' 아아 정말 그러했다. 트리니티가 네오를 찾아갔듯이 내가 교보문고를 갔었고, 모피어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들이밀었듯이 내 앞에는 빨간 일기장과 파란 일기장이 있었다. '인류를 구원하라고 2권의 일기장을 산거였구나' 1년 치 망상을 끌어 쓰는 1월 1일에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나는 매트릭스 세계처럼 무던한 나의 현실을 파란 일기장에, 암울한 시온을 사는 내 정신세계를 빨간 일기장에 적기로 했다.
파란 일기장은 내 육체에 대한 기록이 적히게 됐다. 그날 일어나서 무엇을 먹었고, 몇 시에 집을 나가서 몇 번 버스를 탔는지,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모두 적었다. 마치 수사일지처럼 모든 문장은 동사와 명사로만 이루어졌다. 덕분에 파란 일기장에는 내 주변 사람들의 행적도 들어있다. 이것도 일종의 빅데이터인가. 붉은 일기장에는 나의 머릿속을 옮겨 적었다. 지금 브런치에 쓰는 글들과 유사한 주제들이지만, 단어와 문장이 정제되지 않고 서로 날뛰듯이 엉켜있는 편이다. 그렇기에 정신없지만, 글을 쓸 때의 내 감정은 보다 생생히 담겨있다. 한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고 지독한 비난도 쓰여있어서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도 늘 한다.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며 옷감을 완성하듯이 두 권을 함께 보면 예전의 하루가 온전히 되살아난다.
처음에는 힘에 부쳤지만, 이제는 몸에 배어 익숙하다. 올해 가지게 된 습관 중 가장 애착이 간다. 해가 갈수록 쌓이면 나중에 이걸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고민이다.
(브런치를 쓰게 된 이후, 빨강 일기장에 적는 생각들은 전에 비해 농도가 짙어졌다. 고작 3주 남짓한 기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시끄러웠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갈라졌다. 생각은 정립했으나 공론화하기 꺼려지는 주제들, 나의 입장을 정하지 못해 갈피를 못 잡는 주제들을 붉은 일기장에 전부 담아내고 있다. 그 안에 글들을 정리할 수 있는 내가 된다면, 그때마다 이 곳에 꺼내고 싶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2부 13장
전개: 이제 '나'는 '파이드로스'일때 재직했던 학교에 곧 도착한다. 그는 그곳을 다시 가는 것을 긴장하고 있으며, 마치 수천 년 전 무덤을 마주하는 고고학자라도 된 느낌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파이드로스'로 그곳에서 근무하던 1950년대의 분위기, 공화당이 집권하며 '파이드로스'의 학교를 탄압하는 상황에서 '파이드로스'가 떠올린 진정한 대학의 모습을 회상한다. 그는 대학의 진정한 모습을 교회와 비교하며 '이성의 교회'라고 부른다.
이번에도 중요한 모든 문장들이 앞, 뒤의 문장 덕분에 중요성을 더하여서 옮기지 못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완벽하게 확신하고 있으면 그 일에 대해 결코 온몸을 바치지 않는다. 누구라도 태양이 내일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미친 듯이 외치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내일 태양이 떠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믿음에, 또는 그 밖에 다른 종류의 교리나 목표에 대해 광으로 몸을 바치고 있다면, 이는 항상 이 같은 교리나 목표가 의심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p.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