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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글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
글을 정리하는 게 점점 재밌어진다. 당분간은 하루 한글을 쓰는 내 의지가 꺾이지 않을 것 같다. 글을 쓰지 않게 된다면 현재로서는 100% 외부적 상황에 의한 것일 텐데, 글을 못 쓰게 막는 조건으로는 어떤 게 있을지 생각해봤다. 노트북을 잃어버린다? 엄지가 조금 아프겠지만 모바일로도 충분히 쓸 수 있다. 악플보다 무서운 무플이 찾아온다? 하하 이미 그런 상황인 것을.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생각해보니, 굉장히 슬픈 일들만이 떠오른다.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셔야 하고, 연인관계도 완만해야 하며, 친구들 중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다치는 건 상관없다는 거냐?) 그 뿐만이 아니라 내 친구들의 부모님도 무사하셔야 한다. 내 친구는 내가 글을 썼다는 걸 알지 못하겠지만, 만일 슬픈 일이 찾아온다면 나는 차마 포스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의 불운까지 계산해야 한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모두 24시간씩이나 쓰면서, 수많은 차도를 건너고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먹고, 만원 지하철을 타는 숱한 위기의 상황을 겪음에도 8일째 나쁜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대단한 행운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내가 아는 위험한 순간들이 각각 선으로 연결되며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낸다.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들까지도 무사히 하루를 넘긴다는 게 45가지 숫자 중 6개를 맞추는 것보다 어려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하루 한글을 시작하게 만든, 500일이 넘게 코드를 작성한 John Resig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내게도 500일간 무탈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화웨이 "5년 내 삼성·애플 넘겠다"… 3각 구도 재편 포부
기사를 읽으면서 처음 떠오른 생각은 '이거 오타 아니야?'였다. 소송을 당한 쪽이 삼성이고, 소송을 제기한 쪽이 화웨이라니. 오랫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통념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샤오미 열풍이 불던 2~3년 전에도 소송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고, 그때의 피의자는 당연히 샤오미였다. 뻔뻔하게 기술을 카피하여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확대하는 중국기업과, 선진기술을 보유한 삼성과 애플의 다툼. 영원할 줄 알았던 이 구도는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아 역전이 되었고, 역습의 주인공은 샤오미가 아닌 화웨이였다.
보조배터리를 비롯한 각종 히트 상품을 출시하며 '대륙의 기적'으로 알려진 샤오미와 달리, 화웨이는 나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름만 들어본 기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화웨이가 삼성에게 소송이라니.. 삼성은 지금 제기된 소송으로 딜레마에 빠졌다. 소송의 어느 쪽을 선택하든 최선의 결과는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소송을 이어가자니 자신들이 애플과의 소송을 통해 얻었던 인지도 상승효과를 화웨이가 누릴 것이고, 합의를 하자니 화웨이의 성장세가 무섭다. 합의는 성장세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중국은 아편전쟁 이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GNP 기준) 일본이 중국을 앞섰던 기간은 100년이 되지 않고, 우리나라가 'Made In China'를 무시한 기간은 많이 잡아도 50년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지금의 상황이 충격적일 수 있지만, 중국이 볼 때에는 드디어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나는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대책이 뚜렷하지 않다. 연암처럼 대륙을 돌고 일기라도 써야 하나..
전개: 여행은 계속되고 크리스는 여전히 뾰로통하다. '나'는 그런 크리스의 화를 풀어주지 않고 방치해두는 한 편,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어떠한 존재인 '파이드로스'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여기에서 인간의 세계 이해 방식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고자 한다. 하나는 고전적 이해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적 이해 방식이다..... 고전적 세계 이해 방식을 취하는 경우,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세계란 근원적 형상 그 자체라고 본다. 한편 낭만적 세계 이해 방식을 취하는 경우, 사람들은 주로 직접적인 외양의 측면에서 세계를 본다. <p.134>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종류를 낭만적, 고전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에 의하면 예술, 직관, 상상력은 낭만적 이해 방식에 속하고 이성, 법률, 근원적 진리는 고전적 이해 방식에 속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개 이 중 하나의 방식을 선택하고 오직 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한다.
이 설명에 의하면 나는 고전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하지만, 천성 때문인지 혹은 오랜 시간 동안 낭만적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데 익숙해서인지 낭만적 시선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다. 내 주변 많은 사람들도 대개 낭만적 유형의 사람이다. 나는 때로 그들의 생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어느샌가 그들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나를 바라보게 된다. 오월동주.
이 글에 나오는 '나'와 파이드로스는 고전적 인간이다. 앞으로의 내용에서 두 시선이 화해하는 장면이 나올지 기대된다. 과연 나에게 고전적인 시선을 기를 방법을 알려줄 내용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가 사용한 칼은 암살자의 칼이라기보다 서투른 외과 의사의 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양자 사이에는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p.145>
문장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옮겨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