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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Oct 15. 2015

단순함은 과연


 언젠가부터 생각이 많이 단순해졌다. 예전엔 너무 생각이 많은 내가 답답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나는 마음에 들고, 좋다. 이대로가 분명 좋긴 한데, 요즘 들어 뭔가 빠뜨리고 가는 것들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오전 6시 기상, 학교를 갔다 와서, 카페 아르바이트 3~4시간 정도, 취침 후 다시 기상. 주말에는 미뤄뒀던 청소나 과제들을 하고 시간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푼다. 참 깔끔하고 단조로운, 요즘의 내 일상이다. 지금까지의 대학생활 중 내가 이렇게 바빠본 적이 있던가 싶어 괜히 나 자신이 대견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다만 어떤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한 그런 하루들의 연속이니- 어제의 내 미묘한 감정들은 이미 다 흩어져버려 어디로 갔는 지 알 수가 없다. 분명 담아두고 싶은 것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조금 더 붙잡아두고 싶은, 소중한 것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없다는 건 변명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자주 봤던 코피를 요즘 다시 자주 보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세수하며 빨간 코피가 자꾸 뚝뚝 떨어져서 내 얼굴을 씻는 건지 세면대를 씻는 건지.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께선 그냥 코피가 잘 나는 코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쯤 되면 단순히 구조적인 문제만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요즘 같은 때에 생각이 많으면 더 피곤해지기만 하겠지만,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오늘의 일기정도는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뭔가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 있으면 또 저녁을 먹고 나가야 한다. 소중한 것들을 오래 간직하려면 내가 더 부지런해져야 하는데-. 할 수만 있다면 빠르게 도망가는 내 시간의 꼬리를 붙잡아 어디다 확 묶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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