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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Feb 04. 2016

체감- 체득


 엄마와 평소 친구처럼, 서로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관계로 잘 지내는 편이지만 어쨌든 내 엄마이기에 차마 못 다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내가 조금 힘들다고 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엄마께 구구절절 털어놓았다간 나보다 내 걱정을 더 할 분이시니까. 이게 옳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 평소에 장녀 노릇도 잘 못하는 나지만 그래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엄마는 밖에서 얻어오는 걱정들만으로도 충분하고, 나로 인해 엄마 인생의 단 5분, 10분이라도 덜 피곤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평소엔 서로 장난만 치고, 웃고 떠들며 지내는 편인데, 어느 날 참고 참다가 내 안에 화가 쌓여 스트레스가 정말 극도에 달했다 싶은 때가 오면 나도 모르게 그렁그렁한 눈으로 엄마께 쏟아내 버릴 때가 있다. 1년에 1번 정도? 중학교 3학년 땐가는 그러다 눈물까지 보였던 것 같은데, 그 후론 눈물은 자제하고 있다. 주제는 주로 인간관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특히 내 소중한 인연들에 관한 이야기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인데,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 때였다.

 몇 년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엄마는 내게 "이럴 때 좋은 친구가 있고, 저럴 때 좋은 친구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때 나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고, 뭐든 함께 해도 좋은 친구들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내 생각이 욕심이었다는 걸 안다. 톱니바퀴 비유가 구식이라는 건 알지만 인간관계는 정말 그런 것 같다. 서로 다른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 그래서 잘 돌아가는 것 같다가도 가끔은 삐걱거리고, 끼익끼익 거리며 아예 멈춰 서버리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왜 그래야 하냐고, 그냥 늘 잘 맞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냐고 툴툴 거렸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엄마 말씀이 옳았다는 걸 체득할 수 있었다. 서로의 톱니가 안 맞아 삐걱댈 때는 감정도 상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걸 알 수 있게 해 주고, 나중엔 추억거리가 되어 관계의 윤활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사람과 부대끼는 재미는 그런데서 오는 것 아닐까? 물론 내 톱니가 튀어나온 부분에서 같이 튀어나와 싸우게 되고, 들어간 부분에서는 또 같이 들어가서 애초에 맞물릴 수가 없는 관계는 재미가 아니라 고통만 있을 뿐이니 고통을 재미라고 위안 삼지는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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