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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May 16. 2016

나는야 프로불편러!

자아 찾기


 '프로불편러', '프로예민러'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 거지~", "에이, 뭘 그런 것 갖고 트집이야?"라며 웃어넘길 일을 죽어라 물고 늘어지는, 인생을 좀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인데, 나는 이 말이 불편하지 않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로 상당히 적절하기 때문이다.


 요즘 열중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내 자아 찾기'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지만, 나에게는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없다. 이것도 그놈의 자존감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일부러 집중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해 혼란스러워지기 일쑤였다. 나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대체 어떻게 뭘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고, 지금 다른 사람들은 뭐하고 있을까 궁금해하기만 했다. 아주 극단적인 상태일 때는 내가 딸기우유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늘 그런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져 싫었는데, '자아 찾기'를 시작하고부터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져서 그런지 최근에는 그런 증상이 확 줄어들었다. 


 무튼 그 자아 찾기 과정에서 알아낸 것 중 하나가 바로 내가 프로불편러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마냥 긍정적이고 털털한 성격이 좋다는 생각에, 내가 예민하다는 걸 부정하곤 했는데, 그냥 인정해버리고 나니 이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지가 예민한 게 뭐 자랑이라고 이렇게 떠들어대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나를 믿는다. 나는 초, 중, 고를 지나 대학까지 다니며 사회 부적응자가 되지 않기 위한 교육을 성실히 받아온 사람이다. 그런 내가 예민해봤자 뭐 얼마나 예민하겠는가? 그저 타인에게 해가 되는 언행들을 볼 때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지, 독서실에서 누군가 숨을 쉰다고 해서 '숨 쉬는 것 좀 조심해주세요.'라는 쪽지를 날릴 사람은 아니다.


 아, 원래 계획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 몇 가지만 얼른 토로해버리고 제주도 여행 플랜 짜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서론이 이마이 길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자주 안 썼는데,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이 꽤 많이 쌓여 있었나 보다. 지금도 머릿속에서 써달라고 이 생각 저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본론은, 언젠가 또 쓰겠지 뭐. 




물귀신 작전을 써보자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중에서도 분명히 프로불편러가 상당수 있다. 나는 지금 이 몇 줄 안 되는 글을 쓰는데 두 시간을 썼다. '자아 찾기'라고 쓰는 게 좋을지, 좀 더 구체적으로 '내 자아 찾기'라고 쓰는 게 좋을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너무 지겹지는 않은지 고민됐기 때문이다.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작은 단어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 음 그런데, 예민함이 지나쳐 자기 자신의 예민함마저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이다. 세상은 예민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저 덤덤하게, 그러려니하고 살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원시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물고기 잡아먹고, 풀 뜯어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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