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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May 19. 2016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이것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中




"여자 아이돌이 안중근도 모르다니, 참으로 무식하기 짝이 없다."

"여자도 군대 가야 돼! 여성 차별하지 말라면서 왜 힘든 건 안 하려고 해?"

"여자들이 자꾸 날 무시해! 죽여버릴래!"


AOA 설현, 지민이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몰라서 온 국민이 달려들어 욕을 퍼부어댔다. 그래서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허리 굽혀 사과했다. 그런데 정작 그 소중한 우리의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시키려 하는, 진짜 왜곡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분들은 그만큼 욕먹지도, 사과하지도 않는다. 조국을 팔아먹고도 여전히 갑으로 대접받으며 살아가는 그분들은 왜 가만히 내버려 두는가. 


여성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여성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여성들에게 그렇게 관대했는가? 여성들을 군인으로 만들지 않는 사람들은 남성 권력자들이다. 헌법을 지키는 사람들,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사람들. 그들이 열심히 계산기 두드려 보니, 여성들을 군인으로 만들어서 얻게 되는 이득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군대는 최소 투자로 최대 효율을 끌어내야 하는 대표적인 집단인데, 그 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남성들이 군대에 징집되는 이유는 '남자라서'가 아니라 '적합해서'다. 그리고 여성은 '부적합해서' 징집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공익이나 면제 판정을 받는 남성들, 그리고 미성년자들 또한 '부적합'하다고 판단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징집을 원하는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군대에 대한 공포 때문일 것이다. 군대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부조리들을 보고 듣고 직접 겪는 남성들이 가지는 공포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일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여성들을 부조리의 구렁텅이로 함께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를 타파하는 것이다. 군대에 가지 못하는 남자들이 없애버린 군 가산점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고 싶다면, 행동하라. 여성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생각되거든, 시위를 하든, 국방부나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걸든 행동을 하라.


여자가 무시해서 그냥 죽여버리겠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자신이 진짜 화내고 싶은 대상에게 화내지 못하고 여성에게 화풀이하는 게 아닌지 제발 다시 한번 생각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내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현실이 무서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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