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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Jul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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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취향의 발견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는 건 혼자 있을 때보단 덜 외롭고 더 즐겁지만, 오롯이 나만의 감정에 집중하기는 힘들다. 나 이외에 다른 것들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다지 내 취향이 아닌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눈 대화가 굉장히 즐거웠다면 그곳은 내게 좋은 느낌으로 남게 된다. 반대로 나에겐 정말 완벽한 장소인데도 여행 파트너와 다투거나, 이 곳이 너무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면 그 만족감은 줄어든다. 하지만 혼자 다닐 땐 내 마음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별로 내 취향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곳이 의외로 이번 여행의 한 수가 되거나, 거기에 가면 정말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축 쳐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취향을 알게 되는 것이다. 혼자 여행의 참된 묘미는 아마 이것에 있는 것 아닐까? 자아 찾기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무튼 이런 경험은 자신에 대해 어색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받게 만든다.


 나의 경우엔 우도와 섭지코지가 뜻밖의 한수였다. 섭지코지는 원래 여행 계획에도 없었다. 그런데 계획을 너무 여유롭게 짰던 탓인지 갈수록 시간이 너무 남아도는 지경에 이르러서, 사람들이 하도 좋다고 하니까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다녀왔고- 우도에선 드디어 스쿠터를 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들로 복잡한 관광지는 너무 정신없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람이 많은 것 따위는 아무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풍경이 너무 예뻐서 황홀경에 빠질 정도였다. 쨍한 햇볕을 받은 바다색이 고왔고, 잔잔하게 철썩대는 파도소리가 좋았고, 까만 돌들이 있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의 요소들이 한데 모여 내게 완벽한 합주를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반대로, 나는 내가 비자림을 정말 좋아할 줄 알았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고, 혼자 산책하는 것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니까. 공기도 맑을 것이고, 여름날 아침 산책이라니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그런데 이게 웬걸, 1시간을 걷는 내내 내 마음에는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 정말 최악의 공간이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대만큼 내 취향에 부합하는 공간은 아니었다. 마치 컴퓨터 효과음같은 새소리를 들었을 땐 너무 신기해서 녹음도 해왔고, 이런저런 나무들을 구경하는 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비자림은 나에겐 너무 어둡고 적적했다. 역시 난 활기차고 밝은 곳을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나는 '빛'을 좋아했던 것이다. 밤길을 걸을 땐 줄지어 있는 노란 가로등들을 보면 마음이 좋아지고, 낮에는 따사로운 햇볕 받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초록빛 울창한 그 숲엔 빛이 없었다. 인공적인 조명도 없고, 햇볕도 잘 들지 않으니 내 마음이 들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사소하지만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내 구체적인 취향을 새롭게 알게 된건, 앞으로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을 하나 더 알게 된 것이니 이보다 더 즐거운 발견이 있을까. 제주로 혼자 떠나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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