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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Apr 24. 2018

페미니스트의 방향성에 관한 고찰

꾸밈 노동

 메갈 이후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 사상을 받아들였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 등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성들 중에서도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깨닫는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지면 이제 곧 양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좋은 세상이 금방 올 것 같지만,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요소가 한 두개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유리천장, 꾸밈 노동, 성적 대상화, 결혼제도 등 그것들을 저항하고 깨부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노선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이 글에선 여성들에게만 강요되는 ‘꾸밈 노동’과 페미니스트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우선, 여성들이 꾸미는 행위를 ‘꾸밈 노동’이라고 하는 이유는 화장하고 치마 입는 여성들을 비하하는 의미가 아니라 여성들이 원하지 않아도 꾸밀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영화관 같은 곳에서 여자 알바생과 남자 알바생에게 요구하는 꾸밈의 정도가 다른 걸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남자 알바생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안경을 껴도 괜찮지만 여자 알바생은 그러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여자 머리’에서 벗어나 투블럭컷을 하면 회사에서 짤리는 경우도 있다. 생계와 관련된 이슈뿐만 아니더라도, TV속 여자연예인들이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자랑하는 경우는 없지만, 남자 연예인들은 자신의 수북한 겨드랑이 털을 마음껏 뽐낸다. 천만 영화 속에서 “여자는 치마는 짧고 머리는 길어야지.” 라는 대사를 남자 연예인이 마치 세기의 명언인 양 읊기도 한다. 요즘 어린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는 화장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당장 생각나는 예시들만 해도 이렇게나 많다. 여성들은 언제나 사회가 원하는(남자가 원하는) 미적 기준을 지키도록 강요 받아 왔다. 남성들이 풍만한 체형을 좋아할 때는 그것에 맞추려고 노력했고, 요즘엔 마르고 연약한 여성상을 원하니 많은 여자들이 우울증에 걸려가면서까지 과도한 다이어트를 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깨닫고, 여성들의 꾸미지 않아도 괜찮을 자유를 위해 어떤 사람들은 화장을 지양하고, 숏컷을 하고, 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람들을 지지한다. (이 들중 몇몇 과격한 사람들이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여성들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들이 모두 긴 생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여성들은 꾸미지 않아도 된다! 꾸밈 노동을 강요하지 마라!”라고 외치는 것보단, 실제로 길거리에 꾸밈 노동 하지 않은 여성들이 돌아다니는 게 훨씬 효과가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성 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가지고 이들을 조롱하는 페미니스트들도 꽤 많다. 이유가 뭘까하고 생각해봤는데, 아마 자신들의 경쟁력이 외모말고는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외모’를 포기하면 사람들이 자기를 좋게 봐주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 아닐까?

 물론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꾸밈 행위가 ‘꾸미면 내 기분이 좋으니까, 남자들에게 예뻐 보이려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일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심으로. 그런데, 화장하고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신체 부위를 노출시키는 행위가 과연 정말로 자기 자신의 욕구일까? 그렇다면 왜 코스메틱 덕후는 남성보다 여성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을까? 왜 대부분의 남성들은 자기의 피부톤이 어떤지 모르고, 자신이 상체비만인지 하체비만인지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갈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취향이라는 것이 과연 진짜 내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Girls can do anything)”이라면서 왜 여자들의 자유로운 행위를 제한하려고 드냐는 의견도 있는데, 글쎄. 이미 여자들에겐 꾸밀 수 있는 자유 그 이상의 것이 주어져 있다. 여자가 꾸미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여자가 꾸미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온갖 참견을 듣거나 심한 경우 알바나 직장에서 짤릴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꾸밀 수 있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극단적으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러면 페미니스트들은 다 삭발하고 민낯으로 추리닝만 입고 다니면서 자연인처럼 살아가란 말이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사회 활동을 하면서 자연인처럼 사는 남자들이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사람들과 적절히 어울리기 위한 어느정도의 꾸밈 노동은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주어진 짐을 좀 덜자는 것이다.


 나는 모든 여성들이 숏컷을 하고, 화장 하지 않고, 다이어트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꾸밈 노동을 한다고해서 페미니스트가 아닌 건 아니다. 다만, 사회적 편견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며 힘을 빼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올바른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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