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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수 Jan 30. 2018

1987은 알탕영화인가?

위대한 역사 영화에 올리는 아쉬운 말씀


 영화 1987은 개봉 되고 나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터져 나왔다. 속된 말로 ‘알탕영화’라고 비판하는 쪽과, 역사적 사실이 그런 걸 어쩌라는 거냐는 쪽 사이에서 오가는 논쟁들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나는 이제서야 보고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결론은 1987은 좋은 영화다. 좋은 배우들을 써서 만든, 소재가 좋은 영화. 비교하자면 택시운전사 보다는 연출적으로는 더 괜찮은 영화였다. 그러나 나에게 1987의 영화적 가치는 이정도가 끝이다. 우리의 가슴 아픈, 잊지 말아야 할 위대한 역사를 조롱하려는 게 아니다. 개봉만 했다하면 중박, 대박 치는 이런 영화들의 파급력, 영향력 측면에서 정말 아쉽다는 이야길 하려고 한다.


 1987을 보면서 왜 ‘알탕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단지 여자 캐릭터가 1명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평론가 분이 그랬듯, 김태리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겨우? 성장?!’ 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스토리상, 남성 캐릭터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거 이해는 된다. 그러나 내가 “영초언니”에서 만났던 그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1987에서 그나마 많이 나오는 김태리 캐릭터는 성장하자마자 영화가 끝났고, 그 외에 기억나는 여성 캐릭터는 아들이나 남동생이 잡혀가서 주저앉아 오열하는 캐릭터, 데모 하는 사람들을 숨겨주거나 물 떠다 주며 응원하던 캐릭터가 전부다. 물론 화면에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데모 하는 여성 캐릭터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로 스쳐 지나갔다. 영화 전반적으로 “격하게” 운동 해서 잡혀가거나, 다치고, 고문 당하는 인물들은 죄다 남자였다. 영화를 보면서 ‘여자가 다치는 장면이 나오면 너무 충격적일까봐 일부러 안 찍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987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까 궁금해서 검색해봤는데, 그 중 충격적인 글이 하나 있었다. “왜 여자들은 거의 안 나오지? 하긴 그 시대에 여자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어쩔 수 없지”라는 글이었다. 정말로 그 시대 운동권은 다 남자들밖에 없었을까? 여자는 시위 하다 다친 남자 치료해주고, 물이나 떠다주는 존재들이었을까?


 이래서 미디어를 늘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심어주는 이미지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아주 조용히 그리고 강하게 자리 잡는다. 아마 나도 얼마 전에 “영초언니”라는 책을 읽지 않았다면, “김태리 캐릭터 괜찮은데? 이정도면 여자 캐릭터로 많이 보여준 거 아냐?”라고 1987을 감쌌을지도 모른다.


 영초언니는 서명숙씨가 박정희 시절 자신을 운동권으로 이끌어준 ‘영초언니’라는 분에 대해 쓴 수필이다. 나는 잊혀진 여성 위인들도 많을 것이다, 라고 그저 막연히 생각하고만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던가에 놀랐다. 여성들은 독재 정권에 맞서 스스로 일어섰으며, 직접 데모를 일으키기도 하고, 목소리 높여 외치고, 쫓기고, 잡혀가서 얻어터지고, 구속 당하는 주체였다. 박정희 시절만 그랬나? 일제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사 속에서 지워졌을 뿐, 여성들도 남성 위인들 못지 않은 업적들을 많이 남겼다. 조직을 만들고, 폭탄을 제조하고, 일본인 관료를 암살하려 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에서 여성의 이름들은 그저 어떤 남성 위인의 아내, 어머니 정도로밖에 나오지 않는다. 시험에서도 ‘지엽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억지로 외우려는 학생들마저 없다. history가 his story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더이상 이런 역사 영화에서 여성이 조력자, 피해자로만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죄다 남자들만 등장시키니, 영화에서 써먹을 수 있는 스토리나 연출도 제한적이게 된다. 역사적 소재만 다를 뿐이지, 정의로운 남자 1,2명에 좀 웃긴 남자 1명 나오고, 폭력적인 남자 우글우글 나와서 계속 때리고 발로 차서 보는 사람을 공포와 분노에 몰아넣고는 마지막에 승리감을 맛보게 해준다. 분명 다른 영환데 왠지 변호인을, 택시운전사를 또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감독이 원한 게 이런 거라면 성공한 거지만, 나에겐 역량 부족으로 보인다. 아마 다음에 또 이런 영화가 나오면 나는 굳이 돈주고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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