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수 Jan 11. 2018

저는 당신의 페미니즘 선생이 아니에요.

 저는 자기 주관이 있는 사람, 개성 있는 사람,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많은 온라인 세상을 좋아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팍팍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이런 멋진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도 힘내서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늘 그런 사람들만 있지는 않죠. 브런치를 하면서 멋지고 다정한 분들을 더 많이 보긴 하지만, 종종 종로에서 뺨 맞고 오셔서 저에게 화풀이 하는 분들도 있어요. 몇 번 겪다보니, 처음만큼 화나거나 당황스럽진 않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죠. 요즘 뜨거운 주제인 페미니즘에 관한 글에는 그런 분들이 더 많이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시작된 지 벌써 2년? 3년? 정도는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반복적으로 찾아오십니다. 한 분 보내면, 또 한 분 오셔서 정말 계속 똑같은 말씀을 하세요. 저는 그 분들과 일일이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무슨 페미니즘 학교를 연 것도 아니고, 일 더하기 일이 뭐냐는 질문만 계속 하시면 저도 대화하는 재미가 없죠. 순수한 질문이면 모를까, 저를 조롱하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걸요. 저는 이제 곱하기, 나누기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 글에도 그런 분들이 찾아오실 수도 있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진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으신 거라면, 저한테 요구하지 마시고 서점 가면 요즘 페미니즘 책이 지천으로 널려있고, 페미니즘 강연도 많이 하던데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나이가 몇 살이든, 사회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옛날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은 당연히 사회와 부딪힐 수밖에 없어요. 늘 자기 자신을 업데이트 하는 데 게으르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무튼, 저에게 자꾸 시비조로 토론같지도 않은 토론을 하자는 분들은 아마 대부분 남성분들이신 것 같은데, 정말 사람만 달라지고 “요즘엔 여성 차별이 없는데 왜 이 난리냐” 혹은 “왜 잘못 없는 남성들까지 싸잡아 욕하냐”라고 똑같은 말씀을 계속 하시더라고요? 이런 분들은 여성 혐오가 뭔지, 페미니즘이 뭔지, 그런 개념을 전혀 모르고 계신거에요. 아는 거라곤 자기가  여혐한다고 욕먹은 거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억울한 거에요. “나처럼 여자 좋아하고 착한 사람이 무슨 여성 혐오를 한다고 그래!! 난 억울해!!” 하는 거죠.

 그런데 여성 혐오라는 용어는, 여성을 미워하고 싫어해서 괴롭힌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80, 90년대 자행되었던 대규모의 ‘여아 낙태’ 라든가,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는 강간, 연쇄 살인, 여성들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농담 등등 이 모든 현상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여자를 좋아해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찍는 사람도 여성 혐오자고, 착한 남자들도 웃으면서 “여자는 25살 넘으면 꺾인거지”, “오 저 여자는 한 80점?”, “남자친구가 사줬다고? 김치녀네~” 라는 농담을 일삼곤 하죠. 심지어 유관순 열사는 우리에게 ‘누나’라고 불립니다. 감히 유관순 누나라고요. 이봉창 오빠, 윤봉길 오빠라는 어감은 괜찮으신가요?


 그리고 “왜 잘못 없는 남성들까지 싸잡아 욕하냐”는 말은 아마 요즘 메갈, 워마드라 불리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자꾸 말씀 하시는 것 같은데, 우선 제가 그런 사람도 아니고, 왜 자꾸 저한테 와서 화풀이를 하시는 건지 이해가 잘 안되고요. 저는 비정상회담에서 캐나다 대표로 나왔던 기욤이란 분이 하셨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차별을 없애기위해서는, 역차별을 해서라도 그 수준을 맞춰야 한다.”라고 하셨었는데, 캐나다가 얼마나 그런 쪽으로 교육이 잘 되어있는지 알겠더군요. 사실 인터넷 악플 정도가 무슨 역차별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여성들이 현실에서 차별을 계속해서 겪는 한 이 추세는 계속 될거라 생각합니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여성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였다면, 여성 차별이 심한 나라가 아니었다면, 메갈, 워마드는 생기지도 않았을 테고,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지도 않았겠죠. 인터넷을 하다보니 어느 날 메갈이라는 게 생겼다는데, 보니까 걔네가 하는 말이 다 맞는거에요. 실제로 우리 엄마만 집안일을 하고, 내 친구가 성희롱을 당하고, 회사 면접에서는 “우리 회사는 여성 차별이 좀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하는 말을 듣게 되고.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깨달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 가고 있는 건데, 이걸 무슨 수로 막겠어요? 지금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단계는 ‘여성 차별을 이제서야 인식하고, 분노하는 단계’에 있는겁니다. 쌓여있던 게 터졌으니 격할 수밖에 없죠. 근데 격하다고 해봤자 인터넷에서 타자 좀 치는 게 전부인데, 몇몇 남성분들은 그것마저 보기가 싫으신 가봐요. 지금까지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등등 여성을 비하하는 말들 들으면서, 쓰면서 많이 웃으셨죠? 그럼 앞으로도 그냥 계속 웃으시면 됩니다. 제가 보기엔 그런 말들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수준인데, 그걸 한 글자만 바꿔서 ‘무슨무슨 남’이라고 하니 못 웃으시겠는 건가요? 악플이라는 게 좋은 건 아니죠 당연히. 하지만 그런 현상이 없었다면, 그저 착하게 “양성평등 합시다”, “여성 차별 하지 맙시다” 했다면 아무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뻔하고 당연한 말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런 현상들을 필요악이라고 보고, 방관하는 입장입니다.







여자, 남자 나뉘어서 서로 욕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게 마음이 편치는 않죠.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저도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육아, 집안일은 당연히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하고, 여성들이 밤길을 마음 편히 다닐 수 있고, 여성이란 이유로 커리어 쌓는데 지장이 없으며, 귀찮은 화장을 안 하고, 갑갑한 브래지어를 안 해도 되고, 내 돈으로 명품백을 사든 스포츠카를 사든 욕 먹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온다면, 더이상 서로 싸울 이유가 없겠지요. 굳이, 페미니즘 같은 걸 알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당연히 존중하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힘들어하는 날 제발 먼저 눈치채 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