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정도 만난 애인에게 브런치를 보여줬다. 이 공간을 보여주는 건 내 속내와 역사를 다 보여주는 것 같아서 웬만한 지인들에겐 오픈하지 않는데, 이 정도 만났으면 나에 대해 좀 더 알려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면 늘 주말에만 보다가 처음으로 6일을 연속으로 만나서 기분이 너무 들떠버린 탓에 판단 착오를 일으켰거나. 브런치를 보여주고 예상보다 더 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공개를 후회하는 건 아닌데, 마음이 마냥 속 시원하거나 상쾌하진 않았다.
차 시동을 끄고, 어두컴컴한 지하주차장 한 켠의 작은 내 차 안에서 꽤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 생각을 했다. 단순한 쑥스러움이 아니었다. 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 우리 관계에 해가 될까? 애인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참 멋없지만 솔직히 그런 걱정을 했다. 내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나서는 조금 우울해졌다. 내 정체성이 내 소중한 관계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속상했다. 그래서 예전에 썼던 내 글들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열어봤다. 과거의 내가 애인이 염려하는 만큼 질 나쁜 인간이었나 싶어서. 내가 나를 의심하는 순간은 정말로 기분이 더럽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과거의 글들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건 오히려 지금의 나였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선명하게 생각을 하고 글도 썼는데, 지금의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많이 흐려진 나 자신을 포장하기 급급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여성단체에 매달 기부하는 것 외에 페미니즘에 관심을 거의 두지 못했다. 위계질서 뚜렷한 이 세계에서 발언권 없는 막내 주제에 마음에 안 드는 것들 일일이 다 생각하면서 사는 건 자발적 고문 같았고, '흐린 눈 흐린 귀' 스킬을 잘 써야 오래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어디 가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입장인데, 애인한테는 내가 질 나쁜 페미니스트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모순이라니.
지금 이 순간도 사실 내가 뭐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냥 페미니즘을 받아들인 한 사람일 뿐인데. 내가 뭐라고 얘기하든 상대방은 자신의 입장에서 날 판단할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상대에게 내가 뭘 하든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그저 지켜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