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우면 답이 없지

그곳은 개미지옥

by 주디


그가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며칠이 행복했다. 키 크고 하얗고 뽀송하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동그란 뒤통수까지 죄다 귀여워 보였다. 뒤통수까지 귀여우면 진짜로 귀여운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난 그가 걸어가는 뒷모습, 둥근 뒤통수만 봐도 귀여워 보였다. 그는 몇 년 전보다 불안도가 높아졌고 이전에 없던 틱 증상이 가끔씩 나오고 무언가 불안정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나를 위해 노력해 주는 모습에 더 많이 웃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건강을 위해 꾸준히 식단과 운동을 하며 관리를 하는 편이다. 그는 나처럼 관리를 하겠다며 다이어트 비법을 물었다.


"나도 이제 빡세게 해 볼게. 식단을 짜주실래요? 살 빼면 같이 후쿠오카 가자."







식단 조언을 해달라는 그의 말에 메모장을 켜고 열심히 적어내려 갔다. 누나, 연어는 어때? 닭다리살 한 팩씩 소분된 거 주문할까? 아니면 닭가슴살 뭐가 좋아? 낫또도 괜찮아? 구운 계란은? 제로 음료수는? 나 이제 금주한다! 열혈 수강생이 되어 질문을 쏟아냈고 나는 그의 모습이 그저 귀여웠다.


"나는 의지가 없어. 누나처럼 의지가 강한 여자랑 결혼해야 되는데. 이제 살 빼야지.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

"아니야. 살 안 빼도 귀여우니까 무리하지 마."

"라면 맛있다."

"다이어트한다며...?"

"시작해야지 생각만 하는 중이야. 스파게티면이랑 닭가슴살바 먹었어."


이런 귀여운 말도 잊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만남을 이어나갔다. 광주에 내려가 그와 함께 점심을 먹고 그는 병원 일정으로 집을 비웠다. 나는 그를 기다리며 카페를 가고 밥을 먹고 방 청소를 해주고. 그를 생각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순간조차 소중했다.







나는 소박한 그가 좋았다. 그의 집은 짐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의 옷장엔 화려한 옷 보다 단조로운 옷가지 몇 벌뿐이었다. 내가 아는 그의 모습 그대로구나 싶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손때가 묻은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며 몇 안 되는 옷을 정리해 주고 바닥을 닦아주었다. 식단 조언을 구하고 구입한 낫또, 제로 음료수 등으로 가득한 냉장고를 보며 기특해서 또 한 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와 대박. 방이 깨끗해졌네. 누나 완전 신부 수업했네."

"나 잘했지? 너도 수고했어. 피곤하겠다."

"나 바로 자야 해. 내일 새벽에 병원 다녀와야 해서. 끝나고 같이 저녁 먹자."


오자마자 금세 지쳐 잠든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불을 덮어주었다. 늦은 시각 귀가한 뒤 바로 쓰러져 자는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는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바쁜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 와중에 나를 신경 써주는 모습이 항상 고마웠다. 하지만 그땐 이런 마음도 충분히 표현해 주지 못했다.







그는 쿠우쿠우와 애슐리 퀸즈를 좋아했고 광주에 가면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가 줬다. 몇 년 만에 그와 방문한 쿠우쿠우와 애슐리 퀸즈는 몹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후 서울에서 후배와 애슐리를 방문했을 땐 그때만큼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음식을 먹고 밝게 웃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는 친한 누나 동생이던 시절부터 줄곧 노래방을 좋아했다. 그럼에도 만나는 동안에는 노래방을 한 번도 가지 못 했다. 나 혼자 코인 노래방에서 영상을 찍어 그가 힘들 때 들으라며 보내주거나 그가 노래방에서 영상 통화를 걸어 함께 노래를 부른 게 전부였다. 본가에 들렀다 서울로 올라가는 KTX에서 내내 그와 영상통화를 하며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감상했다.


"나 랩 잘하는 남자 좋아해! 그래서 너 좋아하나 봐."

"내가 랩 해줄게. 지금 당장 전주에서 만나자. 그럼 우린 결혼하는 거야."

"나 서울 가야 해. 출근해야 한다고."

"결혼은 안 되겠다. 그녀가 포기."


귀여운 농담을 주고받고 큭큭대며 그의 노래를 들었다. 랩을 하든, 노래를 하든, 술 먹고 투정을 부리든 어떤 모습이든지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지독한 개미지옥에 빠졌다. 그 시절의 나는 그가 내 앞에서 웃는 모습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과거의 상처가 많아 방어기제가 강해 마음이 열리면 입덕 부정기에 빠진 사람처럼 투덜대고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으며 더 사랑해 달라는 말을 빙빙 돌려서 표현했다.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과 바라는 것들에 대한 대화를 하자고 약속한 날이었다.


'친구가 SNS 안 하는 여자랑 결혼하고 싶대. 누나가 블로그에 쓴 글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왜 이런 것까지 쓰는 건지 싶은 게 있어.'

'나한테 깨달음을 주는 여자가 좋지. 그런 여자 만나본 적도 있는데.'

'누나는 술을 너무 안 마시잖아. 나는 술을 좋아하고.'


이외에도 밀어내는 듯한 말들과 아리송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건 무슨 뜻이야? 그 말은 왜 한 거야?"

"누나는 왜 이렇게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자꾸 나한테 놔달라는 말로 들려. 정리하라는 거면 내가 너 놔줄게."

"아니야. 놓지 마."


그는 다음 날 나와 2시간 가까이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음을 많이 열었는데 다시는 날 안 볼 거냐고. 나한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내 생각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 한마디에도 의미 부여하고 담아두고 곱씹고, 그의 방어기제를 무너뜨릴 여유가 부족했다. 그땐 그의 표정과 말투에도 흔들릴 만큼 그를 좋아했기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한동안 고민이 많은 건지 나를 피하는 건지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어떤 부분에 기분이 상하고 불편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는 본인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다. 나로 인한 고민으로 복잡한 게 아니라 개인 사정 때문이니 못 만나겠다 싶으면 광주를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그럼 생각해 보고 나중에 연락해. 전화받을 상황도 마음도 아니고 복잡한 건 알았으면 해서. 그땐 상황이 좀 나았을 때고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아. 말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내가 사라지는 걸 두려워했다. 노력하기로 하고 대화를 또 회피한다고 여겼다. 그가 소통과 감정조차 회피할 땐 좋아하는 마음까지 상처였다. 불편해하는 것 같아 표현을 참기 바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덤덤하게 털어놓는 게 고마웠다. 내가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까. 힘든 부분을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늪에 빠져 많이 서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