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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Oct 11. 2021

내가 퇴사시켜줄게

엄마는 내 딸

"엄마, 뭐해? 오늘 춥네."

찬바람 부는 날씨에도 아침 일찍 출근했을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


"춥긴 뭐가 추워. 하나도 안 춥네."

"거긴 비 안 왔어? 여긴 엄청 추운데... 엄마 힘들겠네."

"뭐... 좀 쌀쌀해지긴 했네. 근데 추운 날씨는 아냐"

분명 추운 날씨가 맞는데 엄마는 끝까지 안 춥다고 우긴다.




"아 참, 내가 맛있는 갈빗집 찾았는데 택배로 보내줄까?"

"아냐. 요즘 아빠 혈당이 높아서 고기 먹으면 안 돼."

"그럼 엄마랑 동생이랑만 먹으면 되잖아."

"안돼. 아빠가 고기 좋아하는 거 아는데 어떻게 아빠만 쏙 빼고 먹어. 그럼 못써."

"그럼 엄마는 고기도 못 먹고 뭐 먹고살아?"

"고구마. 요즘 호박고구마가 그렇게 맛있더라. 예전에는 고구마만 먹으면 목메서 못 먹었는데 요즘엔 잘 들어가더라. 다행히 아빠는 고구마를 안 좋아하잖니."

나는 끝까지 양념갈비를 친정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마다했다. 우리 앞에서 티는 안내지만 고구마만 먹고 산다는 우리 엄마는 아빠를 무척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요즘 아빠... 잘 지내지?"

"응. 부동산 시험 준비한다고 정신없지 뭐. 시험 스트레스가 많은가 봐. 그래도 엄마가 잘 챙겨주고 있으니 걱정 마."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내가 어제 아빠한테 '엄마는 왜 사표를 쓸 수 없냐고' 물었지. 그랬더니 그냥 웃더라고."

"엄마가 사표?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직장은 사표 쓰고 나오면 그만인데 엄마라는 타이틀은 사표 쓰고 내려놓을 수 없는 거잖아."

"엄마는 자식들 다 키웠는데 이제 와서 사표가 웬 말이야. 엄마 나이 정도 되어도 엄마를 그만두고 싶어 져?"

"그만두고 싶지. 너네 아빠 챙기랴, 둘째 챙기랴. 항상 종종걸음이지. 둘이 싸우는 날에는 살얼음판 걷는 것 같고... 엄마도 사표 쓰고 싶어."

"아빠가 퇴직하고 다시 큰아들이 된 모양이네. 나이 서른 가까이 된 둘째도 아직 엄마 곁에서 아기 같은가 봐."

"호호호. 그렇지, 그렇지.^^"

나는 엄마 나이쯤 되면 자유로워지는 줄 알았다. 자식들 다 키우고 남편 퇴직까지 뒷바라지하면 편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은근 '엄마는 이제 할 일 끝났으니 맘 편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엄마가 사표를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에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비록 엄마는 저렇게 웃고 있지만.




"엄마, 사표 써도 돼."

"으응?"

"사표 써. 내가 접수할게."

"그럼 이제 엄마는 엄마 안 해도 되는 거야?"

"그럼, 그럼. 이제 내가 엄마 할 테니까 엄마는 사표 써. 엄마는 내 딸 해."

"호호호 그럼 엄마는 이제부터 딸이야?"

"응. 엄마는 내 딸이야."

"엄마 6학년 초등학생 딸 해도 돼?"

"당연하지. 엄마 이제 초등학생이야."

이제 그만 사표를 쓰라는 내 말에 엄마 목소리가 갑자기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사표 써도 된다고 할 때가... 오네...."

엄마의 목소리가 파도치듯 울렁울렁거렸다. 목이 멘 엄마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들렸다.




전화를 끊고 엄마 생각이 서 호박고구마를 쪘다.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어 한입 먹으려는데 목이 메어 먹을 수 없었다.

우리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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