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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18. 2021

150점짜리 남편과 살면 벌어지는 일

'휴직하고 싶다.'

올해 초 피부염 때문에 지옥 같은 학교생활을 보냈다. 마스크만 쓰면 따갑고 간지러워서 너무 힘들었다. 퇴근 후 많이 울었다. 울면서도 울면 피부가 더 나빠질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피부염 때문에 휴직한다는 건 나 스스로가 나약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아 속으로만 생각할 뿐 아무에게도 휴직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해외여행까지 못 가게 되면서 약간 우울하기까지 했다.



"우리 외식하러 나갈까?"

남편이 주말에도 거울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아니... 못 나갈 거 같아."

1년 내내 친구를 단 한 명도 만나지 않았다. 히터를 쐬거나 찬바람을 쐬면 얼굴이 훅 달아올라 통증이 시작됐기 때문에 남편과 외식하러 나갈 수조차 없었다.



차츰 거울에서 손을 뗄 수 있었던 건 투고 준비를 하고 여러 가지 공모전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뭔가에 몰두를 하면 걱정이 많이 사라진다. 그런데 너무 많이 일을 벌여서였을까. 오랜만에 주말에 남편이 와도 마감일에 쫓겨 작업에 몰두했다. 원래 집안일은 거의 내 몫이었는데 뜨거운 열기나 찬바람을 쐬기 싫다는 이유로 바닥 스팀청소, 뜨거운 물로 그릇 헹구기, 쓰레기 갖다 버리기를 남편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투고에 성공했고 남편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시큰둥했다

"너무 일을 많이 벌이는 거 아냐?"

남편에게 축하의 말을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다.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쩌면 학술지에 밥먹듯이 논문을 싣는 남편에게는 바둥거리는 나의 작은 발버둥은 하찮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차라리 자신을 좀 더 내조해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목에 메였다. 그리고 울며 불며 남편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남편이 남의 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우리 사이에 냉기가 흘렀다.





다시 돌아온 주말. 남편이 올라왔다. 우리는 남남처럼 각자의 컴퓨터에 앉아 작업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벽이 등 돌린 남편의 등이라고 했던가. 높게 세워진 벽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오빠..."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남편의 사과에 코끝이 찡했다.

"아냐, 내가 너무 예민했어. 나도 화내서 미안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토닥거리며 화해를 했다.






얼마 전 찬바람이 씽씽 불던 날, 공모전 원고를 부치러 우체국에 걸어가려던 참이었다. 원고를 봉투에 넣어 집 밖으로 나서려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내가 우체국에 대신 다녀올게. 밖에 춥잖아. 가면 또 마스크도 써야 할 테고..."


남편은 계속 나 대신 혼자 우체국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 혼자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같이 가자. 오빠가 우편물 부치는 동안 난 차 안에 있을게."


우리는 차를 타고 우체국에 갔다. 업무 마감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주차장엔 차가 꽉 차 있었다. 남편은 내 우편물을 들고 우체국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금방 다녀올게."


금방 온다던 남편이 10분이 지나도, 15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창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오빠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남편이 돌아왔다.

"오빠,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오늘 이상하게 사람이 많더라고. "

대기가 길었다고 짜증을 낼 법도 한데 남편은 싱글벙글 웃으며 차 시동을 켰다.


"고마워. 오빠."

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연거푸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고맙긴 뭘. 다음에도 또 해줄게. 이번에 낸 거 잘 됐으면 좋겠다."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은 항상 나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겠다고 했다. 내 가슴이 뭉클했다.

"근데 떨어지면 어쩌지?"

"떨어지면 내년에 또 하면 되지!"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에는 따뜻한 공기가 가득했다.



 



토요일. 내가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남편이 청소기와 식세기를 돌려놨다. 남편은 엉덩이 춤을 추면서 집안일을 다했다고 룰루 거렸다.

"오빠, 사람들이 오빠 이런 춤추는지 알아?"

"모르지. 항상 병원에선 근엄하게 일하지. 에헴."

"내가 그럼 엉덩이 춤 영상 찍어서 대학병원 게시판에 올려 벌리 거야."

"안돼! 사람들이 충격받을 거야. 귀여운 애교는 너한테만 보여주는 거라고!"


남편은 내 옆에 꼭 붙어서 춤을 췄다.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깔깔대고 웃었다.

"오빠가 최고지?"

"응. 오빠가 최고야."

"점수로 몇 점인데?"


"오빠는 100점 만점에 15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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