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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an 07. 2022

아빠한테는 밥해주지 마!

아빠가 퇴직한 지 2년이 지났다. 한 때는 아랫 직원들 앞에서 고개를 하늘 높이 들고 뒷짐 다니던 아빠가 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가 되어 매일 아침 등교하는 1학년 꼬마 신사 숙녀들의 눈을 마주치려고 고개를 숙이며 "애들아, 헬로~ 굿모닝."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나는 내심 아빠가 배움터지킴이 일에 작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다. 나는 학교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잘 안다. 사람들이 배움터지킴이를 얼마나 무시하곤 하는지.

"아빠, 배움터 일은 할만해요?"

"응, 아주 재밌어."

아빠는 유쾌하게 "헬로~ 굿모닝"하고 인사하는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후다닥 안방에 들어가 1학년 아이가 쓴 쪽지를 가져와 나에게 자랑을 했다. 그 쪽지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것 봐, 애들이 나보고 선생님이래."

아빠는 싱글벙글 웃으며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애지중지 쪽지를 들고 있는 아빠에게 무심하게 말했다.

"원래 애들은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다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알아. 그냥... 그래도..."

아빠는 멋쩍게 웃으며 쪽지를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쪽지를 넣는 아빠의 손이 가늘고 쭈글쭈글했다. 나는 화제를 돌려 아빠가 요즘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다. 이때, 엄마가 끼어들어 말했다.

"아빠가 삼시세끼 집에서 밥 먹잖니. 엄마는 아침에 밥 차리랴, 집안일하랴. 출근하랴. 퇴근하면 그대로 녹초가 된다니까."  

나는 눈을 세모 낳게 뜨고 아빠에게 쏘아붙이며 말했다.

"아빠는 오후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도 밥도 안 하고 청소도 안 해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남자도 밥을 할 줄 알아야지. 언제까지 차려주는 밥 먹을 거예요? 엄마는 출근하느라 힘든데 아빠가 밥 차려먹으면 안되나요?"

아빠는 시선을 떨구고 휴대폰만 만지작 댔다.

"엄마, 이제 아빠한테 밥 차려주지 마요. 반찬은 그냥 반찬가게에서 사 먹으면 되니까 엄마는 반찬도 하지 마세요. 엄마도 그만 이제 주방에서 졸업해야지. 아빠, 계란 부칠 줄은 알아요?"

"응. 할 수 있어. 나도 젊은 땐 혼자 자취하면서 밥도 해 먹고 그랬어..."

아빠는 몸을 한껏 움츠리며 개미 소리처럼 작게 말했다.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아빠 퇴직하고 나서도 자격증 딴다고 공부하는 바람에 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다했잖아요. 아빤 도대체..."

한창 다다다다 잔소리를 내뱉던 찰나 내 옆에 동생까지 가세해서 아빠를 몰아붙였다.

"언니, 아빠 요즘에도 새벽에 운동 다녀. 그 바람에 나랑 엄마랑 항상 새벽에 깨서 아침마다 비몽사몽해."

나는 성난 눈썹을 만들고 아빠에게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가족들이 힘들어하잖아요!"

"응...... 그래......."

 아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슬그머니 안방으로 빠져나갔다. 내가 한마디 더 하려고 나서자 엄마가 손을 휘저으며 나를 말렸다.

"됐어. 됐어. 그 정도면 됐어."

"엄마는 참, 그러다가 엄마 힘들어서 쓰러지면 어떡해. 이제 진짜 아빠 밥해주지 마요. 그리고 반찬은 사 먹어요. 알았죠?"

나는 문을 쾅 닫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본가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며 생각했다.

'불공평해. 우리 집은 뭔가 잘못됐어.'









아빠의 생신일이 다가왔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생신파티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물었다.

"아빠가 말하길 이제부터 생일은 간단하게 넘어가자고 하더구나. 엄마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다들 바쁠 때이니 너네들 휴가 때 외식 한 번 하는 걸로 하자."

"아빠가 웬일이래요? 아빠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는데?"

아빠는 퇴직하기 전에도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는 걸 좋아했었다. 어디서나 대접받고 대우받으며 살았다. 그런 아빠가 생일파티를 하지 말자고 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야. 아빠가 진짜 그랬어. 아빠도 예전 같지 않아."

나는 아빠가 달라졌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빠는 아직도 집안일을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집에서 왜 밥은 안 해요? 엄마 이제부턴 진짜 밥 하지 마세요."

나는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아직 아빠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나는 이따금씩 아빠에게 전화해 엄마를 도우라고 잔소리를 했다.  나는 심술이 나서 아빠가 눈이 침침하다며 대신 작성해달라고 부탁한 서류도 귀찮은 말투로 뒤로 미뤘버렸다. 아빠는 그저 가만히 잔소리를 들었다. 화도 내지 않고 "응. 그래."했다.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동생에게 연락했다. 나, 엄마, 동생이 합세한다면 아빠도 결국 두 손 두 발 들고 말 것이다.


<메신저>

나: 아빠, 아직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 드셔?

동생: 응. 그럴 땐 아빠가 얄미워. 그런데 어쩔 땐 아빠가 불쌍해.

나: 불쌍하다니?

동생: 아빠가 계란을 부치려고 기웃기웃하다가 맨밥에다가 생야채만 두고 먹는 거야. 엄마가 챙겨주지 않으면 늙은 할어버지같아 보여서 불쌍해. 게다가 엊그제 내가 아빠를 쏘아붙이니까 아빠가 갑자기 우는 거야. 아빠도 잘해보고 싶은데 퇴직 후에 공부하던 것도 잘 안되고, 스스로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서 속상하다고. 그 말 듣고 나도 너무 속상했어.

나: 그렇구나...... 난 아빠가 항상 밝은 줄 알았어.

동생: 엄마도 아빠 기죽을까 봐 밥 해주는 거래. 아빠의 굽은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대.

나: 엄마는 사랑을 밥으로 표현하는구나. 그러면서도 밥하기 힘들다고 하는 건 여전히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고 티 내고 싶어서 그런 거였고. 이제 아빠 보고 뭐라고 하지 말자.




동생과의 대화를 끝내고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아빠가 눈물을 흘렸다니. 아빠도 나름 가족들 앞에서 슈퍼맨처럼 늠름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매일 밤 속으로 얼마나 울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졌다. 진즉 엄마가 아빠 때문에 밥하기 힘들다고 투덜대는 건 진짜로 밥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아빠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티 내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아빠에게 모진 소리를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주섬주섬 생일 파티용품을 꺼냈다. 다시 예전처럼 아빠의 생신축하파티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가족들의 박수를 받으며 고깔모자를 쓰고 허허 웃으며 초를 후~ 부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아빠가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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