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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ug 12. 2021

의사 와이프의 삶은

화려할까, 평범할까, 비참할까.

1. 부부 모임은 싫어요


"부부모임 있는데 너도 갈래?"

"아니 -_- 난 안 갈래. 가봤자 왕따 될게 뻔해"

"아냐, 동기들이 너도 오면 좋겠다고 했어. 같이 가자."

"왕따 같은 기분 정말 싫~~~다~~~구~~우~~~"


  남편 동기들은 대부분 의사 부부다. 절친들마저 99%가 의사다. 남편은 부부모임에 혼자 나가는 걸 아쉬워하겠지만 초등교사가 그 자리에 가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알 수 없는 의학용어가 난무하는 그 자리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겠지.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했다. 물론 공통 관심사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지 일부러 누군가를 소외시키려고 작정한 게 아닌 걸 알기에 상처 받진 않지만 불편한 건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남편이 조금 아쉬워할 것 같다.  






2. 시댁 식구들마저 의사라면


  시댁 식구들도 대부분 의사다. 다들 매우 젠틀하시고 좋으신데 병원 운영, 최신 의학기술, 학술발표 같은 대화 주제가 나오면 대화에 참여하기 어렵다. 특히 내가 조용한 성격이라 더 그런 것 같다. 이럴 땐 꽃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님과 오붓하게 단둘이 꽃 사진을 보면서 하하 호호하는 게 최고다. 


  그러나 그들과 공통 관심사가 적다는 게 큰 장점이 될 때도 있다. 괜히 말실수를 해서 오해를 사는 일이 없고 서로의 일에 간섭하거나 훈수 두려고 하지 않는다. 각자가 너무나도 바쁜 삶을 살기 때문에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개인주의적인 내 성향에 딱 적합한 가족 분위기이다. 시댁 간섭에 괴로워하는 며느리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것 같다. 


  오히려 친정식구들이 서로에게 관심이 너~무 많아서 피곤할 때가 있다. 요즘 들어 애는 언제 냫을거냐고 하도 물어보는 바람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차라리 시댁처럼 각자가 너무 바빠서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면 좋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댁 식구들이 의사면 시집살이를 할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가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축 쳐져 있는 날이면 '혹시 시댁에서 괴롭히냐고'물어보는 동료 교사들이 있다. 한두 번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점점 반복되다 보니 '혹시 내가 시댁에서 괴롭힘 당하길 바라는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3. 행복한가

  

   우리 집 주변에 유명한 내과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그 앞에 큰 현수막이 걸렸다. 

'00 내과에서 영양제 주사를 맞고 죽은 내 아들을 살려내라.'


  그 내과 앞을 지나갈 때마다 죽은 고인의 사정이 무척 안타까웠지만 그 내과 의사가 느낄 무거운 죄책감의 크기가 어마어마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과 의사의 학력을 살펴보니 레지던트, 펠로우까지 마치고 대학교수로 10년 일하다가 개원한 케이스였다. 그동안 쌓여온 명성과 노력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순간 아니겠는가.


  아마도 그 내과는 피해자와 합의를 하던가, 몇 달 더 버티다가 병원을 접고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될 것이다. 개원하느라 대출한 돈은 모두 빚으로 남게 되겠지. 다른 지역으로 옮겨도 재판은 계속될 것이고 다시 재기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큰 빚만 떠 앉은 채.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남편이 개원하고 싶다고 얘길 꺼낸다면 마냥 좋지만은 않고 여러 가지 감정이 몰려올 것 같다. 


아직은 남편과 주말엔 쉬고 함께 저녁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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