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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Oct 24. 2021

30대 교사가 되면 벌어지는 일

나도 모르게. 어느새

1. 선생님 옷은 싫은데...


나는 30대 교사 아줌마지만, 주말에는 샤랄라 한 아가씨가 되고 싶다.

그래서 모처럼 새 원피스를 샀다. 새 옷을 입고 쪼르르 남편에게 달려가 묻는다. 

"오빠, 나 옷 샀어. 이 옷 어때? 주말에 놀러 갈 때 입을 거야."

"응. 원래 입던 옷 같네."

"원래 입던 옷 같다니?"

"항상 입는 선생님 옷이잖아."

"뭐어?!!! 선생님 옷?"



남편은 방실방실 웃으며 새 옷을 '선생님 옷'이라고 칭했다. 그가 말하는 '선생님 옷'이란 딱 봐도 선생님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옷이란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장은 아니면서도 학교에 가면 선생님들이 흔히 입을 법한 단정한 옷쯤이 되겠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요리조리 옷을 살펴본다. 그리고 풀이 죽어 주섬주섬 옷을 빈 백에 집어넣는다. 

"나 이거 반품할 거야. 선생님 옷 입기 싫어."

 

남편은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황당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인다. 선생님이 선생님스러운 옷을 입는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무엇이 그리 맘에 안 들어서 툴툴대며 새 옷을 반품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옷장을 열어 옷을 살펴본다. 한쪽 구석에 20대 때 입었던 알록달록하고 샤랄라 한 옷들이 유물처럼 전시되어있다. 이제 어린 나이도 아닌데 학교에 그런 옷을 입고 가긴 좀 부끄러워서 몇 년 넘게 손대지 못했다. 확실히 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옷 입는 스타일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어릴 땐 일부러 선생님스러운 옷을 찾아 헤맸는데 이젠 본능적으로 그런 옷들만 구매한다. 


거울 앞에 다시 한번 서서 생각한다.

'나 정말 선생님처럼 보이나?'



나도 모르는 사이 싫다던 선생님 옷에 다시 손이 간다. 그리고 선생님 옷을 입어야 편하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남편에게 묻는다.


"오빠, 이 옷은 선생님 옷 같아?"















2. 선생님 같은 말투는 싫은데...


늦은 저녁. 우리 반 학부모로부터 긴급한 상담전화가 왔다. 

"네네~ 00이 어머님. 안녕하세요?......(중략)......  네, 어머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돌아서는데 곁에 있던 동생이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한마디를 툭 진다.

"언니, 평소 전화 말투랑 정말 달라. 소오름. 옛날 우리 반 선생님 말투랑 똑같아."

"헉!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원래 말투랑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데 가족들은 내가 학부모 상담을 할 때 선생님 말투를 쓴다고 한다. 선생님 말투가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선생님 말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엔 엄마를 붙잡고 물었다. 

"엄마, 나 선생님처럼 말해?"

"네가 그런 면이 있긴 하지. 엄마 아빠한테도 선생님처럼 말하잖아."

"선생님처럼 말하는 게 뭔데? 선생님 같은 말투는 싫은데..."

"아... 그게... 설명하긴 어려운데... 있어, 그런 거. 선생님스러운. 뭔가 자세히 설명해준다거나... 옳고 그름을 확실히 구분 지어 말한다거나.."

"그래서 그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좋고 나쁜 게 어딨어. 그냥 몸에 밴 거지."



거울을 보면서 내 몸에 밴 '선생님스러운 것들'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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