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앤선생님 Oct 17. 2021

너희는 내 자존심이다

우리 반을 향한 미운 정 고운 정

방과 후 각 학년 연구실은 신문고가 울리는 곳이다.

둥둥둥둥 

각 반의 선생님들이 상소문을 가지고 올라왔다. 

곧 각종 하소연이 시작된다.



"아니~~~ 글쎄~~~ 말하는 말끝마다 말대답해서 진도를 하나도 못 나가는 거 있지?"

"아... 그반 VIP요?"

"그래, 내가 아주 속이 뒤집혀. 진짜!"

"에이, 그 정도야 뭐. 애교죠. 저희 반은 모둠활동에 애들이 자기를 안 껴준다면서 소리 지르고 울고 불고... 본인이 모둠원들한테 한 짓은 모르는 체 딱 잡아떼더라니까요."

"그래도 저희 반만은 못해요. 차라리 울고 불고 하는 게 낫겠어요. 워낙 충동적이라 친구들 때릴까 봐 조마조마해서 제명에 못 살겠어요."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믹스커피 한잔을 짠한 것으로 결의를 다진다. 꽁꽁 얼었던 마음도 뜨거운 차 한잔으로 사르르 녹는다. 


"자, 그럼 업무 하러 갑시다."


짧았던 신문고 타임을 뒤로하고 업무를 처리하러 각자의 교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메신저에 불편한 쪽지가 하나 도착했다.


선생님, 민준이가(가명) 오후에...

  

제목만 봐도 불편하다. 안 눌러봐도 무슨 내용인지 알겠다. 침을 꿀꺽 삼키고 메시지를 열어본다.


선생님, 민준이가 오후에 자전거 거치대에서 마스크도 안 쓰고 친구들이랑 몸싸움하고 있었어요. 자전거 안전장구도 착용하지 않는 것 같아서 제가 따끔하게 한마디 했어요. 지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속에서 천불이 나고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답장을 보낸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잘 지도할게요.


다음날 우리 반 민준이가 등교하자마자 교실 밖으로 불러냈다. 처음에는 조곤조곤 타이르는 말투로 시작했으나 점점 갈수록 잔소리 투로 변한다. 평소보다도 더 많이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면서 주의를 준다. 민준이는 선생님이 아침부터 갑자기 왜 이렇게 예민한 건지 어리둥절할 거다. 


교실로 돌아온 민준이는 기가 팍 죽어 하루 종일 조용하다. 민준이가 조용하니 착착 수업 진도가 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속상하다. 민준이를 따로 불러내 내 속마음을 터놓는다. 


"사실 선생님은 민준이가 다른 선생님한테 혼나는 게 싫어"


분명 연구실에서는 '민준이 때문에 힘들다. 머리가 아프다. 친구들한테 나쁜 짓을 한다'등등 부정적적인 얘기만 늘어놨으면서도 민준이가 다른 선생님한테 혼나는 건 싫다. 아이들은 이런 이중적인 담임선생님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너희들은 내 자존심이야. 그러니까 다른 데서 혼나고 다니지 마. 그럼 선생님이 속상하니까."


화해의 의미로 민준이에게 마이쮸 하나를 내민다. 민준이는 쭈뼛거리다가 마이쮸 하나를 받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교실로 돌아간 민준이는 기분이 풀어졌는지 또다시 소란을 피우며 수업 진도를 방해한다. 아이고 머리야, 또다시 신문고를 울리러 가야겠다. 

이전 07화 학부모와의 통화가 떨리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