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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Dec 28. 2021

학부모와의 통화가 떨리는 이유

여전히 미숙한 교사

"저희 아이, 지금 당장 집으로 보내주세요."

"어머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죄송해요. 진우(가명) 수업마저 듣고 하교하게 해 주세요"

"아니요. 지금 당장 집으로 보내주세요. 그럼 전화 끊습니다."

뚜뚜뚜...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내 손이 파르르 떨린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다시 진우 어머님께 전화를 건다. 그러자 녹음된 소리가 나온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부랴부랴 진우 어머님께 문자를 보낸다.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려서 자꾸 오타가 난다. 


나: 어머님 오해가 있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진우가 수업에 잘 참여하고 즐거워하는지라 수업 다 끝나고 보내도 될까요? 연락 부탁드립니다. 

진우 어머님: 선생님, 저는 업무 중입니다. 더 이상 연락은 어렵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감사합니다.

나: 지금 돌려보내면 진우가 많이 속상해할 거예요. 수업 끝나고 돌려보내게 해 주세요.

진우 어머님: 선생님, 저는 업무 중입니다. 더 이상 연락은 어렵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진우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곧이어 교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교무행정사님: 선생님, 진우 어머님께서 지금 바로 진우 하교시켜달라고 달라고 교무실에 전화가 왔네. 


나는 뭔가 잘못되가고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방학 중 학교에서 캠프를 운영하던 중이었다. 방학이라 그런지 어제와 달리 학교는 조용했다. 

'이제 진짜 방학이구나~!'

나는 여유롭게 차 한잔을 마시며 캠프에 참여할 아이들이 등교 전 자가진단 앱을 잘 실행했는지 확인했다. 학생 두 명이 아직 앱을 실행하지 않아 푸시 알람을 보냈다. 잠시 후 '전원 정상 등교 가능' 알림이 떴다. 

'설마 갑자기 온라인으로 전환될 일은 없겠지. 모든 게 잘 돼가고 있어.'

나는 마시던 차를 홀짝 거리며 편안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캠프에 참여하기로 한 학생들이 특별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그래 안녕?"

학생들이 자리에 앉았다. 모두 제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교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우야, 여긴 무슨 일이야?"

나는 휘둥그레 눈을 뜨고 진우를 바라봤다. 진우는 이미 지난여름캠프에 참여했던 학생이라 참가자에서 제외외했었다. 무슨 일로 온 걸까. 진우는 화들짝 놀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저 캠프하러 왔는데요."

"엥?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출석부를 다시 한번 살펴봤다. 진우는 참가 대상자가 아니었다. 아마 진우 학부모님께서 착각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진우를 수업에 참여시키고, 쉬는 시간을 틈 타 진우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00 초등학교 교사 000입니다. 진우가 오늘 캠프에 왔네요. 진우는 지난여름에 참여했었죠?"

"네. 지난여름에 참여했어요."

"여름에 참여했던 친구는 제외한다고 안내문 보냈었는데..."

"그래요? 못 봤는데요."

"아, 그렇군요. 근데 진우 외에도 참여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선착순에서 밀려서 참여 못했거든요. 혹시 진우만 왜 두 번 참여하냐는 말이 나올까 봐 좀 걱정이 되는데... 진우랑 어머님께서 다른 분들께는 말씀 안 해주면 좋겠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니.... 그런 안내문은 못 봤었는데... 그래서 어제 제가 선생님께 전화도 했던 거고요. 그런데 안내가 없었잖아요."

"저에게 전화를 하셨었다고요?"

진우 어머님은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수업 중이라 체육선생님께서 전화를 받았던 거였다. 나는 캠프 운영방식 및 일정에 대해 전체 공지를 해달라는 학부모님이 있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참가 대상자'에게만 다시 한번 운영 안내문을 푸시 알람 보냈었다.


"저는 참가 대상 학생의 학부모님께 온 연락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참가 대상자에게만 안내문을 보냈었어요. 몇 학년 몇 반 누구의 학부모님인지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네? 몇 학년 몇 반 누구 학부모라고 말했었는데요? 그 선생님이 전달을 잘 못하셔 놓고..."

"음... 어쨌거나 참가자에서 제외한다는 안내는 보냈었어요. 안내문 전송 기록이 있는데 캡처해서 보내드릴 수도 있어요."


이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안내문 전송기록을 캡처해서 보낼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듣는 상대방의 입장에선 불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저보고 안내문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작정 애를 학교로 보내 놓고 민원 넣는 학부모처럼 대하시는 건가요?"

진우 어머님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안내문을 못 받으셨다고 하길래 그렇게 말씀드린 거예요. 그리고 진우만 편애했다고 얘기가 나올까 봐.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제 눈에는 민원이 들어올까 봐 전전긍긍하시는 선생님으로 밖에 안 보여요. 우리 애 당장 돌려보내 주세요."


이때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어머님,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오해가 있으셨다면 죄송해요"

"진우한테 뒷말이 나오면 상처가 될까 봐 걱정이 되지만 이왕 학교에 나온 거 마저 캠프에 참여하고 가게 해달라고 했으면 그렇게 해달라고 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네요. 우리 애 당장 보내주세요."

"네? 어머님, 제 말이 그 말인데요..."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선생님한테 민원 들어올까 봐 걱정만 하시는 거잖아요. 그냥 수업 듣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 없잖아요. 보내고 싶으신 거잖아요. 우리 애 당장 돌려보내 주시라고요."



순간 나도 감정이 격해졌다. 그리고 방어적인 말투로 내 말만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선생님 말씀만 하시지 말고 제 말을 들어보시라고요!"

순간 쏟아내던 말을 멈췄다. 그리고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학부모랑 이렇게 싸우게 될 줄이야.

"죄송해요. 어쨌거나 진우가 수업을 듣고 싶어 해요. 수업을 다 듣고 가면 좋겠어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당장 집으로 보내주세요."


나는 울고 싶었다. 진우 어머니는 진우를 집에 돌려보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아는데 어떻게 돌려보낼 수 있을까. 진우도 저렇게 좋아하는데...

나는 뚜뚜뚜 끊어진 전화기를 붙잡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문자를 보냈다.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롭지 못한 걸까.



결국 나는 교무부장님께 SOS를 청했다. 교무부장님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진우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진우 어머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장님.. 죄송해요. 신경 쓰게 해 드려서..."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내가 다시 전화해볼게.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잠시 후 교무부장님께 연락이 왔다.

"진우 어머님하고 통화했어. 많이 화가 나 계셨더라고. 진우는 수업 다 듣고 가기로 했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부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나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학교는 조용했건만 내 마음엔 폭풍이 치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내 말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안내문을 캡처할 수 있다며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기, 격양되면 내 말만 쏟아내기 이 두 가지가 문제였던 것 같다. 


나는 구부정한 어깨로 터덜터덜 교무실로 걸어갔다. 교무실을 발칵 뒤집어지게 만들어서 죄송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하지만 교무부장님께서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잠시 학교 밖 벤치에 앉아 찬바람을 쐬었다. 운동장은 조용했고 학교는 평화로웠다. 말라비틀어진 낙엽이 쉬이 쉬이 날리면서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도 미숙한 나.  갈길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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