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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Oct 09. 2021

더 이상 눈치 보며 먹지 않기로 했다

교사들만 공감하는 교사들의 직업병

1. 교사들만 공감하는 교사들의 직업병


방과 후 학년 연구실에 갔더니 동학년 부장님께서 가슴을 두드리시며 끙끙대고 계셨다.

"부장님, 어디 아프세요?"

"응... 밥을 너무 빨리 먹었나 봐."


옆에 계시던 옆반 선생님께서 부장님 등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셨다. 

"많이 아프세요? 가뜩이나 그 반 VIP님 때문에 힘드시잖아요."

"말도 마. 오늘도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더라고."



남들은 교사들의 직업병이 성대결절인 줄로만 알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위장병을 달고 산다. 특히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학교에 위장병 환자들이 넘쳐난다. 교사들은 철저한 거리두기 지도 및 방역을 위해 아이들이 급식실에 모두 착석하는 것을 확인한 뒤 식사를 시작하고,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기 전에 일어나 줄을 세워 교실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아이들의 평균 식사시간은 10분이 채 안된다. 선생님이 너무 느리게 먹으면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선생님, 빨리 드세요. 저희는 다 먹었어요. 밥도 다 먹었는데 급식실에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심심해요. 교실로 가고 싶어요'라는 눈빛을 보낸다. 그래서 빨리 먹을 수밖에 없다. 정말로 20분 이상 식사하시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나도 집에서는 30분 정도 먹는데 학교에서는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5분 만에 밥을 해치워버린다. 

그래서 밥을 조금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가 있었다. 



"부장님, 저도 요즘 소화가 잘 안돼서 밥을 덜 먹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니까 너무 금방 배가 고파져요. 그다지 적게 먹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옆반 선생님도 내 말을 거들며 말씀하셨다.

"나도 이상하게 급식을 먹으면 금방 허기져. 급식 밥은 좀 다른 밥인가?"


우리 셋은 머리를 맞대고 '왜 급식을 먹으면 금방 허기지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내놓기 시작했다. 

"급식실에선 밥을 찐다고 하던데. 혹시 찐밥이라서 금방 허기지는 게 아닐까?"

우리는 무릎을 탁 치며 일리 있는 말이라고 수긍했다. 비록 엉터리 같은 추측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래고 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집에서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가져와 먹으면 적게 먹어도 포만감이 더 오래가지 않을까 









2. 과연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남편에게 급식실에 현미밥을 가져가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오빠, 보온 통에 현미밥을 싸서 급식실에서 먹는 건 어떨까?"

"좋은 생각이긴 한데. 아침에 귀찮을 듯. 그리고 눈치 보이지 않나. 하고 싶은 대로 해"

"아... 그렇지... 눈치 보이지..."


그렇다. 나만 혼자 현미밥을 가져와 먹으면 여러 사람의 눈총을 받을게 뻔하다. 

저 사람은 왜 밥을 싸왔을까. 

다이어트하는 건가. 

다이어트한다면서 간식은 왜 먹지.

그냥 주는 거 먹지 너무 극성 아닌가.

아침에 귀찮지도 않나 봐

대단하네. 밥까지 싸오고.


이런저런 구설수가 나올게 뻔하다. 아이들도 묻겠지. 

선생님 그거 뭐예요?

선생님만 왜 다른 거 먹어요?

선생님 그거 맛있어요?

저도 먹을 거 싸와도 돼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내 꿈은 가늘고 길게 가는 교사가 되는 거다. 

남 눈치만 보면서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말도 못 하고 살고 싶진 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우울해지고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싶어 진다. 작은 일부터 내 갈길을 가기로 했다. 










3. 오늘도 배부른 하루였다.


아침에 눈대중으로 밥을 계량해서 보온 통에 잡곡밥을 넣었다. 가방이 살짝 무거웠지만 그다지 귀찮진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아이들을 줄 세우고 급식실로 내려갔다. 빨간 보온 통을 옆구리에 낀 채 당당하게 걸었다. 급식실 여사님께서 밥을 퍼주시려고 하길래 손을 저으며 말했다. 

"저 밥 가져왔어요. 안 주셔도 돼요." 


그리고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흰밥 대신 집에서 가져온 잡곡밥을 먹었다. 체할까봐 샌드위치와 사과즙은 받지 않았다. 대신 우리반 아이들이 내 몫의 샌드위치와 사과즙을 더 먹을 수 있었다.


우리 반 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왜 다른 밥 드세요? 그거 맛있어요?"

"아니 맛없어 ㅋㅋ"

"왜 샌드위치는 안 드세요? 이거 맛있는데..."

"그 대신 네가 하나 더 먹을 수 있었잖아. 너네들이 맛있게 먹으면 선생님도 배불러."




오늘도 배부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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