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이앤선생님 Aug 15. 2021

상사의 지나친 관심은 거절합니다

관심을 꺼주는게 배려랍니다

  '선생님, 수업 끝나면 교무실로 내려오세요.'


  교감선생님의 메시지다. 왜 나를 부르는 걸까. 꼬투리 잡힐 일이 있었는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최근 기안문을 올리지 않았으니 그 문제는 아니겠고. 학기말이라 업무와 관련해서 상의할 일도 없을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못한 일이 없다. 별일 없겠거니 하면서 교무실로 내려간다.


  교무실 입구에 빼꼼 얼굴을 내밀고 둘러보니 다른 반 선생님과 교감선생님과 얘기 중이다. 업무 얘기는 아닌 것 같고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복도에 서서 대화가 끝나길 기다린다. 일부러 대화를 엿들으려고 한건 아니지만 창문이 몇 개 열려있어서 그런지 대화 내용이 복도까지 다 들린다. 


  "요즘 산부인과에 다닌다며?"

  "아... 네."

  "왜 임신이 잘 안돼?"

  "네..."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대?"

  "......" 

  "그래서 맘고생 중이구나! 애가 귀하게 들어서려고 그러는 거야."

  "......  교감선생님, 여기 다른 선생님들도 계신데... "


  멀리 서 있는 나까지 얼굴이 붉어졌다. 교무실 안에는 교무부장님과 교무실무원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굳이 여러 사람이 들리는 자리에서 할 얘긴가 싶었다. 


  "아... 그렇구나. 그럼 복도로 나가서 얘기할까? 운동을 해야 돼. 요즘 운동하고 있어? 나는 실내 자전거 타잖아. 실내 자전거 타니까 허벅지도 굵어졌어."

  "......"


  나는 그들이 복도에 나오기 전에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까지 민망하고 불편한 느낌이다. 그 선생님이 주기적으로 조퇴를 하고 있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목적지를 항상 비공개 처리하셨기 때문에 산부인과에 다니고 있는지는 몰랐다. 아마도 주변에 굳이 난임치료를 받고 있다고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그래서 교감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적잖이 당황스러우셨을 것 같다. 

  

  한편으로 교감선생님의 입장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교직원 복무담당자, 업무 배정 담당자로서 교원들의 건강상태를 아는 것도 학교경영의 일부이다. 그리고 누군가 아프면 괜찮냐고 묻는 게 도리이자 따뜻한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내가 당한 일도 아닌데 괜스레 기분이 안 좋다. 여기저기 복도를 맴맴 돌고 있는데 지나가는 수석교사님과 마주쳤다. 


  "수석님!"

  "어, 잘 지내고 있지?"

  "네. 별 일없으시죠?"

  "그런데 왜 이렇게 복도를 맴돌고 있어?" 

  "교무실에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저랑 교감선생님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잘 안 맞는 거라기보다는 옛날 분이라 그렇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 그분이 살아온 여정과 지금 세대의 모습은 다르잖아. 그래도 자기는 자신을 지킬 힘이 있잖아. 안 그래?"


  수석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옛날에는 김장철만 되면 주말에 평교사들이 교장선생님의 집에 방문해서 김치를 담가드렸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직장 생활이 삶의 대부분이었고 개인 사생활과 직장 생활을 구분 짓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요즘 세대 사람들이 차갑고 매정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렇게 복도를 한참 맴돌다 교무실에 들어갔다. 


  "교감선생님, 부르셨어요?"

  "어, 왔어? 조퇴 신청했더라고."

  "마스크 쓰고 수업하다 보면 가끔 두통이 심해서요."

  "음... 요즘 조퇴를 너무 자주 하는 것 같은데" 

  "저 연가 21일 중 아직 1일 7시간밖에 안 썼는데요."

  

  순간 교감선생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본인의 연가사용시간을 외우고 다니는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겠지. 아까 복도에서 맴맴 돌 때 혹시 조퇴 낸 것 때문에 나를 부른 건가 싶어 총 연가사용시간을 냉큼 확인하게 온 게 신의 한 수였다. 


  "그렇긴 한데 알잖아.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워낙 조퇴를 잘 안 써."

  "아... 네."


  당했다. '그래도 아프면 조퇴하는 게 맞죠? 수업해야 하는데 병가 내면 안 되잖아요.'라고 시원하게 되받아쳤어야 했는데. 


  "혹시 운동하고 있어? 운동을 해야 돼. 그래야 안 아파."

  "아... 운동... "


  터덜터덜 교실로 돌아와서 제대로 받아 치치 못한 것에 분노한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연습한다. 다음번에는 꼭 당당히 말하리라.


  "관심은 감사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세대에 살고 있다. 직장 상사의 관심은 거절한다. 

   지나친 관심은 꺼주시길 바랍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a href="https://kr.freepik.com/photos/people"> People 사진는 drobotdean - kr.freepik.com가 제작함</a>

이전 11화 교사도 싫은 교사의 직업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