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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Sep 02. 2021

교사도 싫은 교사의 직업병

내가 어쩌다 이렇게 변했지?

1.  이해했니 알겠니 병


미술시간. 아이들에게 책 만들기 도안을 나눠줬다. 도안을 어떻게 접을지 설명해야 할 차례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숨을 크게 내쉰다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게 될 테니까. 

 

"자, 애들아 나눠준 도안받았지? 어떻게 만드는 건지 잘 봐봐. 안 봐놓고 딴소리하기 없기야. 외곽 테두리를 자른 다음에 점선을 따라 잘라요. 다 잘라버리면 안 돼 점선만큼만 잘라요. 다시 한번 말할게. 다 자르지 말고 점선만큼만 잘라요. 한번 더 강조할게. 다 자르지 말고 점선만큼만 잘라요. 다 자르지 말고 점선만큼만 잘라요. 알겠지?"

"선생님, 제 꺼 이상해요."

"다 자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선생님, 제 것도 봐주세요."

"아니... 다 자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선생님, 저도요."


분명히 '다 자르지 말고 점선만큼만 잘라요'라고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는데 도안을 몽땅 다 잘라버린 학생들이 교사 책상 주변으로 우후죽순 모여든다.


"애들아, 가위 내려놔. 00아 가위 내려놔. 하던 일 멈춰. 선생님 말 들어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설명할게. 외곽 테두리를 자른 다음에 점선을 따라 잘라요. 다 잘라버리면 안 돼. 점선만큼만 자르세요. 이해했니?"

 

아이들이 정말 잘 이해했는지 의심스럽다. '알겠니? 이해했니?' 만으로는 부족하다.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


"00아, 선생님이 방금 뭐라고 했지?"

"... 못 들었어요."

"후.. 다시 시작한다. 테두리를 자른 다음 ~@#$%#$^^$~~~~~"


이렇게 헷갈릴만한 내용은 최소 10번 이상 말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집중하세요 -> 설명 -> 다시 한번 강조할게 -> 설명 -> 나중에 딴 소리하지 마세요 -> 설명 -> 알겠니?->하던 일 내려놔라 -> 설명 -> 선생님 말 잘 들어요 -> 설명 -> 이해했니? ->설명 ->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 말해봐 -> 설명 -> 됐니? 이해됐니???????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 가족들에게도 '이해했니? 알겠니?'를 무한 반복하고 산다. 어디 이해했니, 알겠니 뿐이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말을 무한 반복하는 병이 생겼다. 얼마 전 가족 중 한 명이 휴대폰을 저렴하게 팔겠다는 사기꾼에게 넘어가 새 휴대폰을 받아 온 날, 이해했니 알겠니 병이 극에 달해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약관을 제대로 듣고 구매해야지 그냥 사면 안되지. 어떻게 계약했는데? 계약 내용을 말해봐.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사기야. 왜 사기라고 생각하냐면~ #$%#^#%&~. 이해했어? 이해 못한 것 같은데?~@$%$^%$&~ 다시 설명할게~ @$%^$%&$&~ 알겠어? 대답이 왜 이렇게 시원찮아. 내가 뭐라고 설명했는지 다시 나한테 말해봐. 이해했어? 알겠어?????"


이해했니 알겠니 병은 가족들에게 미안한 직업병 중의 하나다. 흑흑...









2. 골고루 먹어야지 병


코로나가 터진 이후 학교에서 급식 검사를 하지 않았다. 급식 검사를 하는 대신 거리두기 지도를 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기에 교사도 되도록 절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교사도 나름 급식시간에 음식의 맛을 음미하고 조용하게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급식 검사를 하느라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급식 검사를 하다 보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고, 먹기 싫다는 아이 앞에서 좀 더 먹어보라고 사정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급식 검사가 싫다고 하지만 (물론 나도 싫지만) 의외로 수많은 학부모들이 급식 검사를 해달라고 한다. 급식 검사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얼른 밖에 나가 축구하려고 밥을 대충 먹거나, 다이어트한다고 밥을 안 먹거나, 좋아하는 음식만 골라먹는 탓에 집에 가자마자 배고프다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다. 


어쨌든 코로나 때문에 벗어나고 싶었던 급식 검사에서 해방됐다.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코로나가 불러온 웃픈 현실이다. 하지만 평소 급식 검사하던 짬밥은 여전히 어딜가지 않았다. 나는 학생이 아닌, 내 남편의 저녁식사를 검사(?) 한다. 남편은 집안에 고혈압 내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면, 고기, 달콤한 커피를 많이 먹는다. 나는 남편이 채소를 잘 먹지 않는 게 걱정된다. 지금도 통통한데 살이 더 찌면 여러 가지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오빠, -_- 고기만 다 골라먹고 채소는 하나도 안 먹었네."

"채소도 먹었는데?"

"상추도 그대로고 오이도 하나도 안 먹었잖아."

"김치 먹었어."

"김치는 채소류에 끼워 넣지 마. 골고루 먹어야지. +_+ 이거 하나씩만 먹어"

"(내 눈치를 보며 채소를 입에 넣는다)  자, 먹었다. 됐지?"

"응 잘했어^^. 근데 하나만 더 먹어봐. 아이고 잘 먹네."


급식 검사 4종 멘트 정리: 채소는 안 먹었네. 골고루 먹어야지. 이거 하나씩만 먹어봐. 아이고 잘했다^^

남편은 나보고 집에서도 선생님 같다고 말한다. 나도 인정한다. 인정!

남편아, 미안하다. 하지만 당신의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지?




한편, 교사들은 편식하지 않고 급식을 골고루 먹을까?

정답은 NO! 교사들도 편식이 아주 심하다. 그런데 어떻게 급식 검사를 할 수 있냐고? 교사가 반찬을 남기는 경우 반 아이들이 모두 급식실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싫어하는 반찬이 있어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남기지 않고 골고루 식사를 하는 것도 초등교사의 임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다. 










3. 너 몇 학년 몇 반이니 병


남편과 함께 아파트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본다.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놀고 있다.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 아이들이 참 귀엽게 노네"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팔짱을 끼며 말한다.

"그네를 저렇게 타면 타치는데... 어우, 누구 하나 다치겠는데? 저러면 안 되지. 애들 엄마는 어딨지? 애들만 있나 보네!"


남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느낌이 온다.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다.

"안 되겠어. 한마디 해야지."


남편은 그러지 말라며 내 팔을 잡는다. 나도 '그래, 여긴 학교가 아니지' 하면서 괜히 참견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났다. 아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코뿔소처럼 콧바람을 흥 내면서 한마디 한다.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아이들은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본다. 

"1학년 3반이요..."


엘리베이터는 우리 집 층에 도착했다. 나는 현관문을 열면서 생각한다. 


에휴, 그놈의 몇 학년 몇 반이야 병은 어디서든 튀어나오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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