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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ug 24. 2021

초등학생은 어떻게 연애할까?

핵꿀잼 초등학교판 연애의 참견

1.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자, 170쪽 보자. 누가 한번 읽...   풉 ㅋㅋ "

교과서 지문을 읽게 하려고 교실을 쭉 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 선생님, 저보고 웃은 거죠?"

"(고개를 끄덕이며) ㅇㅇ"

"아아아 앙 진짜!"

"웃긴 걸 어떡해. 넋이 나가 있잖아."

"아 쫌! 쌤!"


  우리 반 남학생 A가 입을 반쯤 벌린 채 여학생 B를 넋 빠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어찌 웃음이 나지 않으랴. 눈빛만 봐도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이게 바로 6학년 담임의 내공이다. 그리고 6학년 담임이 꿀잼인 이유다. 


  비록 남학생들 키가 170cm가 된다한들 애들은 아직 애들이다. 아직 감정을 숨기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서툴다. 아이들의 순수한 짝사랑은 내 마음도 설레게 만든다. 10대로 돌아간 것처럼.


  교실의 러브라인을 파악하는 건 나름 중요한 담임의 업무다. 그래야 교실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사랑의 작대기를 빨리 알아채는 방법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눈빛으로 파악하기. 둘째, 자리 교체 시 반응 살피기. 셋째 교실의 정보통 역할을 하는 학생 섭외하기. 아이들은 선생님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난 다 알고 있다. 


"사실 너 00이 좋아하지?"

"헤엑! 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그들의 러브라인을 모르는 척하기엔 교실 상황이 너무 재밌다.

  그래, 10대의 첫사랑을 즐겨라. 애들아.   









2. 준비물 살 돈은 없어도


  쉬는 시간. 남학생 C가 여학생 D에게 다가가 묻는다.


"너 그 머리핀 어디서 샀어?"

"이거 지하상가에서 샀는데. 왜?"

"아니야, 아무것도."


  이상하다. 예상치 못한 러브라인인가. C와 D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데... 어떤 상황인지 C한테 물어봐야겠다.


"잠깐 선생님한테 와 볼래?"

"쌤, 왜요?"

"아까 D한테 머리핀 어디서 샀냐고 물어봤잖아. 머리핀은 갑자기 왜?"

"아... 그게... 머리핀이 예뻐 보여서 제 여자 친구한테 사주려고요."

"으잉? 여자 친구 있었어?"

"네. 옆반에 있어요."

"아, 옆반. 그래서 내가 몰랐구나. 근데 너 내가 그렇게 리코더 사 오라고 잔소리해도 안 사더니 여자 친구한테 머리핀 사줄 돈은 있는 거야?"

"아...(머리를 긁적이며) 그게..."

"선생님 상처 받았어. 다음 주에 꼭 리코더 사와. 리코더 안사고 머리핀만 사면 선생님 진짜 서운해할 거야."

"(배시시 웃으며) 네, 사 올게요. "


  준비물 사 올 돈은 없어도 여자 친구에게 머리핀 사줄 돈은 있는 초등학생 녀석들. 이게 바로 초등학생들의 찐 사랑인가 보다. 너무 웃겨서 정색하며 혼낼 수 도 없더라.









3. 시련의 상처는 


"선생님, 저 상담 좀 해주세요."

"왜 무슨 일이야."

"00 이가 다른 여자가 생긴 것 같아요."

"오.. 이런... 맙소사."

"저 어떡하죠? ㅜㅜ"


  우리 반 여학생 H는 인기가 많았다. 적어도 우리 반 남학생 3명의 마음을 앗아간 최고 인기녀였다. 그러나 솔로였던 H가 옆 반 남학생 J와 사귀게 되면서 뻥 차인 남학생들의 한숨소리가 끊일 날이 없었다. 그러던 중 J가 H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것이다. 


"누군데? 이렇게 예쁜 널 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학원에서 만난 중학생 누나래요. 지난주에도 같이 영화보기로 했는데 급한 일 있다고 약속을 취소했어요. 저 아마 곧 차이겠죠?"


  H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런 거지 같은 놈을 왜 만나. 만나지 마. 여자의 자존심을 세워야지. 선생님 눈엔 네가 아까워. 공부 열심히 해서 외고 가자. 더 멋진 사람 만나야지. 그놈은 나중에 니 바짓가랑이를 붙잡게 될 거야."

"하지만...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잘 안돼요. 다시 잘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으로서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 연애는 웬 말이냐. 더욱이 바람피우는 놈은 절대 안 된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잊어라. 시간이 치유해 줄 거다.'라고 몰아세울 수 없었다. 좋아하던 사람한테 거절당한 기분. 나도 그 기분을 안다. 성인들도 시련의 아픔은 견디기 힘들다. 


"넌 지금도 충분히 예뻐. 하지만 사람마다 취향이란 게 있잖아. 내일은 치마를 입고 오는 건 어때? 노란 머리도 까맣게 염색하고 길게 길러보는 거야. 그리고 공부도 잘해야 더욱 매력적인 거 알지?"


  H는 울음을 그치고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하교했다. H는 이따금씩 점심시간에 내 옆에 앉아 자신의 연애사를 털어놓고 갔다. H는 정말 조금씩 변했다.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고 머리카락을 길렀다. 그러나 J마음을 돌리진 못했다. J는 중학생 누나와 사귀기로 했단다. 

 H는 잠시 이별의 아픔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긍정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선생님, 저 수학학원이랑 영어학원 등록했어요."


  놀라운 변화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학원을 거부하던 학생이었다. 부모님이 아무리 설득해도 단호하게 거절하곤 했었다. 이런 그녀가 제 발로 학원에 등록했다는 건 범상치 않은 변화였다.


"갑자기 학원은 왜? 전에는 다니기 싫어했잖아."

"멋진 여자가 돼야죠. 저 꼭 외고 갈 거예요. 저 문제집 얼마나 풀었나 보실래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시련의 상처는 누구에게나 감내하기 힘든 아픔이지만,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잘 자라고 있다. 6학년 담임이 너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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