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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Aug 20. 2021

교사지만 구두쇠가 되는 이유

교사의 현실

1. 교대생 때부터 몸에 밴 절약정신


  내가 교대를 다니던 시절 교대 등록금은 정말 저렴했다. 한 학기 등록금이 대략 200만 원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과외 아르바이트 몇 개 하면서 교내 장학금을 받으면 충분히 등록금을 충당할 수 있었다. 특히 나는 이공계 장학금으로 4년 내내 등록금을 전액 면제받으면서 교내 장학금을 받아서 넉넉하게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등록금 고지서에 0이 찍혀있는 걸 보면서 아버지께서 싱글벙글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기숙사비도 저렴한 편이었다. 한 학기에 1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기숙사비와 기타 생활비를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내 동기들 중에는 기초생활 수급가정이 흔했다. 우리는 참 순수하게도 서로의 가정사를 숨김없이 얘기했다. 술 한잔 마시지 않고도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던가, 부모님 병원비를 대고 있다던가 하는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가볍게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진짜 친구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조모임에 빠지게 되는 동기가 있어도 그 사정을 십분 이해했다. 서로의 주머니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집안 사정이 넉넉한 친구들도 절대 티 내지 않았다. 우리 과에 해운대 엘시티에 살면서 건물을 몇 채 갖고 있는 언니가 있었는데 졸업할 때까지 그 언니가 그렇게 사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동기들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든 생활비를 충당했다. 집안 사정이 넉넉해도 그랬다. 그게 우리 과의 문화였다. 아끼고 절약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2.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절약 정신


  대학생 때부터 뿌리 깊이 박힌 절약정신은 졸업 후에도 어디 가지 않더라. 좋게 말하면 절약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린고비다. 졸업 후 첫 월급이 190만 원 정도 됐으니 아끼고 살 수밖에 없었다. 반면 대기업에 취직한 동창들이 두둑한 보너스와 함께 300만 원 정도 수령해 가는 걸 보고 현타가 올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타 지역에 있는 교사 동기와 함께 수다를 떨며 마음을 풀었다.


"월급은 사이버 머니야. 들어오자마자 순삭이야 진짜."

"넌 그래도 월세 안내잖아. 난 월세도 내고 차 할부금도 내야 돼. 학교가 워낙 애매한 곳에 있어서 어쩔 수 없어. 안 그럼 버스를 2번 갈아타야 돼. 심지어 배차간격도 30분이야. 한번 놓치면 알지? 끝나는 거."

"그래서 얼마 저축하냐?"

"저축은 개뿔. 월세 45만 원, 공과금 10만 원, 할부금이랑 보험료 좀 내고 그러면 없지. 엄마한테 용돈 보내드리느라 외식도 겁난다야. 스타벅스에서 가끔 커피 사 먹는 게 유일한 낙이야"

"너네 커플 데이트는 어떻게 하냐."

"그냥 아끼면서 하는 거지. 연금 나오는데 뭐가 걱정이냐는 사람도 많은데 다 써버리면 결혼하면 집은 언제 사냐고..."


  이렇게 신세한탄만 하는 우리네와는 달리 주식,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대성공을 이룬 동기도 있었다. 그 동기를 모셔놓고 투자 성공담을 들었는데 부모님께서 주신 전세금을 빼서 월세로 돌리고 그 자금으로 주식에 투자했다고 하더라. 

  친구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우린 그냥 여든까지 절약이나 해야겠다."











3. 최저임금이라도 받고 싶다.


  교직생활 6년 내내 내게 주어진 업무 중 하나는 청소년단체 대장이었다. 가까스로 7년 차에 스카우트를 떼낼 수 있었던 건 우리 학교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막내 교사가 들어온 덕분이었다. 매년 3월 우리 학교에 신규 발령 난 교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버선발로 나가보면 매번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 오셨다. 결국 나는 7년 내내 학교의 막내였고 모두가 기피하는 스카우트 업무는 항상 내 몫이었다. 

(최근 교사 TO 가 더 줄어서 광주는 6명 정도 뽑는다고 하는데 몇 년째 막내를 탈출하지 못하는 모든 선생님께 응원의 말씀을 드린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막내를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청소년단체 활동이 중지됐다. 하지만 내가 스카우트 인솔교사일 땐 한 달에 1번 이상 주말마다 학생들을 이끌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용인 에버랜드로 가는 경우 7시 학교 출발/6시 학교 도착이었는데 11시간을 일하고도 받는 돈은 고작 출장비 2만 원이었다. 출장비와 초과근무수당을 중복 지급할 수 없다고 하여 매번 2만 원을 받았다. 10월쯤 가는 수학여행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말에 사전 답사하느라 학부모 위원과 교감선생님을 모시고 경주까지 다녀와도 출장비만 받았다. 수학여행 당일에 아침 6시부터 활동을 시작해서, 밤 9시 별빛기행을 마치고 11시에 소등하고, 야간 순찰까지 해도 초과근무수당은 최대 4시간까지만 인정받았다. (*초과근무수당은 호봉에 따라 약간 다른데 대락 만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사실 나에게 돈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멀미를 심하게 하는 탓에 항상 휴게소에서 토하고 물밖에 마시지 못하는 게 힘들었고, 놀이동산에서 학생들이 다칠까 봐 혹은 사라질까 봐 조마조마 긴장하는 게 버거웠고, 학생들끼리 자다가 폭력사건이 일어날까 봐, 세울 수 없는 고속도로에서 학생이 급히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할까 봐 신경이 곤두서는 게 싫었다. 


  이제는 청소년활동 업무도 떼냈고 코로나 때문에 수학여행 갈 일도 없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면 최저임금보다는 더 많이 받고 싶다. 그래야 2만 원으로 커피 한잔을 가볍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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