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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Jan 28. 2022

남편이 이해하기 어려운 교사 아내의 특징

(1) 새 학기 교실 청소에 진심입니다.  

남편은 매년 2월 마지막 주에 나를 위해 꼭 도와주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옛 교실 청소와 새 교실 꾸미기'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2월 말 봄방학 기간에 매일 같이 학교에 출근하여 옛 교실을 청소하고 새 교실을 단장한다. 얼핏 들으면 별거 아닌 걸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초임교사 때는 나도 별거 아닌 줄 알았다) 자취생이 원래 살던 원룸에서 다른 원룸으로 이사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다. 


  우선 사용하던 교실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떠나는 게 정말 중요하다. 나처럼 청소를 대충하고 사는 교사가 아닌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잘하는 선생님께서 그 교실을 사용하게 될 경우 마음속으로 '0 선생님은 교실을 아주 더럽게 사용하고 떠나셨군!'하고 생각하실 테니 말이다. 

  

  작년에 나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먼지 한점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남편과 함께 교실을 청소했었다. 교실에 있던 30개의 책상과 의자를 모두 복도에 내놓았다. 그리고 집에서 쓰던 진공청소기와 스팀청소기로 교실 바닥을 박박 닦았다. 손 때가 묻은 책상과 캐비닛은 매직블록으로 깨끗하게 닦아 냈다. 남편은 교실 청소에 진심인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꼭 이렇게까지 열심히 청소를 해야 해?"

  "응. 해야 해. 선생님들은 정말 깔끔하시거든. 우리는 청소랑 정리 정돈하는 법도 가르치는 사람들이잖아."


  남편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던 일을 도왔다. 나는 이삿짐 전문 센터 직원처럼 목장갑을 끼고, 이동할 물건을 대형 바구니에 차곡차곡 쌓은 뒤, 초대형 손수레에 담아서 빠르고 정확하게 물건을 옮겼다. 지금은 이사 스킬이 쌓여서 척척 잘 해내지만  초임 교사일 때는 맨 손으로 옮길 물건들을 한 아름 안아서 낑낑대며 옮기곤 했었다. 그때 나는 진짜 젊었나 보다. 그렇게 해도 허리가 멀쩡했던걸 보면. 


   교실을 옮길 때 교사 옮겨야 할 짐은 산더미 같다. 기본적으로 옮겨야 하는 교과 도서만 해도  2단짜리 책장 3개를 꽉꽉 채운다.  

국어, 수학, 수익, 사회, 사회과부도, 과학, 실험관찰, 영어, 도덕, 음악, 미술, 실과, 체육 교과서 + 학교 자체 개발 창체 지도자료 + 각 교과서의 지도서(지도서는 교과서 무게의 3배) +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업무 편람들과 업무 서류 

  거기에 나는 학년별 수과학 교과서, 지도서, 문제집 및 영재교육자료까지 갖고 다니는 탓에 옮겨야 할 책이 더 많았다. 남편은 목장갑을 끼고 새 교실에 책들을 착착 꽂았다. 나는 자잘한 사무용품을 캐비닛에 정리했다. 남편이 함께 해주니까 시간이 3배는 단축되는 것 같았다. 교실 비우기, 새 교실로 짐 옮기기를 마친 후 남편은 힘들었는지 책상 세 개를 나란히 붙여 그 위에 누워버렸다.  

"아, 이제 진짜 끝이다. 나 잠깐 누워있을게."

남편은 자신의 어깨를 스스로 두드리며 "수고했어. 수고했어."라고 셀프 칭찬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을 향해 찬물을 끼얹었다.

"미안하지만 이제 시작인데?"

"?????"

"이제 책상하고 사물함에 이름표 붙이고 학급 안내장 뽑아서 올려놔야 해. 문 앞에도 명렬표 붙여놔야 하고...."

"흠, 이름표는 안 붙이면 안 돼? 학교에 오면 알아서 잘 앉겠지."

"안돼. 이름표가 없으면 애들이 불안해해. 해야 돼. 나머지는 나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오빠 먼저 집에 가서 쉬어."

"그렇구나. 역시 고학년도 애기들이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름표 붙이는 거까지만 도와줄게."

남편은 혼자 집에 가기 멋쩍었는지 나를 도와 이름표를 잘라 붙였다.  

"오빠, 고마워 정말."

나는 남편을 향해 빙긋 웃었다. 남편도 나를 향해 웃었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하여 빈 교실에서 아이들의 개인 파일, 개인 학습 공책 양식을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쓰던 교실을 지나치는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새 교실로 이사 온 선생님께서 딸과 함께 고무장갑을 끼고 무릎을 꿇은 채 사물함에 남은 스티커 흔적을 지우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선, 선생님... 죄송해요.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한 건데... " 

"아냐, 괜찮아. 금방 해~ 그나저나 점심은 먹었어?"

"아... 네. "

나는 부끄러워서 벌게진 얼굴로 총총 새 교실로 뛰어갔다. 

'역시 선배 선생님들은 정말 꼼꼼하셔' 

다시 한번 동료 선배교사님들의 내공에 놀란 순간이었다. 







(2) 행사장 꾸미기에도 진심입니다.

  교실 청소, 이름표 붙이기, 학급 자료 만들기를 다 하고 나서도 아직 남아있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실 뒤판을 꾸미기였다. 나는 나름 교실 뒤판에 정성을 많이 기울이는 편이었다. 지금 교장선생님은 교실 뒤판을 검사하고 지적하지 않으시지만 이전 교장선생님께서는 교실을 돌며 주기적으로 교실 환경을 검사하시곤 했다. 그리고 초임교사였던 나는 여러 선생님들이 계신 앞에서 교실 뒤판이 엉망진창이라는 교장선생님의 혹평을 들었다. 학년부장님께서 퇴근 후 따로 위로 전화를 해주실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 후, 나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교실 뒤판에 신경을 많이 썼다. 가끔 동료 선생님들이 우리 반 교실 뒤판을 칭찬해주시면 뿌듯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교실을 꾸미는 것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온갖 행사를 할 때마다 행사장 꾸미기에 달인이 되어갔다.(아무리 그래 봤자 유치원 선생님들의 아기자기함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민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진짜 위대하다.) 

  학교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많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 행사가 많이 취소되었다고는 하지만 매 달마다 자잘한 행사가 있다. 플래카드를 걸지 않아도, 색상지로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매번 학교 행사가 진행될 때마다 왠지 알록달록하게 교실을 꾸며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심지어 가족 행사를 할 때도 플래카드를 걸고 풍선을 불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물었다.

"아니, 왜 이렇게 열심히 꾸며?"


"몰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 이것도 직업병인가 봐."


  







(3) 급식에도 진심입니다.  

  출근하지 않는 주말.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 그건 바로 학교 급식이다. 

힘든 월요일. 씩씩하게 학교에 출근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것도 바로 학교 급식이다. 나는 학교 급식 식단표를 꼭꼭 잘 챙겨보고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는 날에는 하트까지 그려 넣는다. 얼마 전 떡볶이와 딸기가 나왔던 월요일 식단에 하트를 그려놨더니 그걸 본 동생이 이게 뭐냐고 엄청 웃기다며 깔깔대며 웃었다. 

  남편도 일요일 저녁에 학교 식단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방학 중에도 개학 식단표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할많하않이란 표정이었다. 

  "또 급식 식단표 봐? 누가 보면 급식 먹으러 학교 가는 줄 알겠어."

  "아마도 그런 거일 수도. 다음 주 목요일 급식만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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