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규교사였을 때 연세가 꽤 있으셨던 교무부장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딱 하나 후회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은 거야."
"네? 영어공부요?"
"응. 만약 내가 젊었을 때 하루에 한 단어씩만이라도 꾸준히 외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은 처리해야 할 학교일만해도 태산 같아서 엄두도 못 내지만 말이야. 영어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나 부러운지 몰라."
"저도요.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24시간 내내 직장 내에서 영어 한마디 써먹을 일 없어도 영어를 잘하고 싶은 건 모든 사람의 바람인 듯하다. 그리고 새내기 교사였던 나도 그랬다. 영어 공부할 맘의 여유는 없지만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원어민 앞에서는 바짝 긴장하곤 하지만 원어민과 친구처럼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고 오늘까지 188명의 원어민과 5690분을(94시간) 대화했다.
영어를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직장인이 1년 6개월 동안 퇴근 후 주 3회 30분 수업을 한주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가끔은 다 때려치우고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싶었다. 내가 멀쩡한 직장을 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영어를 공부하는가 수없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회화시간 5000분을 넘긴 지금, 영어를 사용할 일이 전혀 없는 직장인이 한주도 빠지지 않고 공부하면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원어민과 대화할 때 내 말을 못 알아들은 원어민이 나를 보며 (ㅎㅅㅎ)???? 표정을 지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았다. 혹은 말문이 막혀서 (ㅇㅅㅇ);;;;;;; 어쩌지. 어쩌지.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바짝 긴장했었다. 하지만 꾸준히 5000분이 넘는 시간 동안 188명의 원어민들과 대화하다 보니 그들은 내가 대충대충 개떡같이 말해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찰떡같이 알아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영어를 잘 못한다고 괜히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는 거다.
어쩌면 나는 내 마음속 깊숙이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무시를 당할 것이다. '라는 편견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수업을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원어민 교사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그래서 모르는 단어나 문장을 들어도 ^ㅡ^ 하하... 하면서 억지 미소를 짓고 넘어가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지 않는다.
"잠시만요, 아까 뭐라고 하셨죠? 제가 모르는 단어가 들렸어요.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질문이 있어요. 아까 제 문장을 교정해주셨는데 제 문장이 왜 틀린 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있으면 바로바로 멈춰서 물어보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번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될 때까지 물어보는 깡도 생겼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영어 회화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영어 회화를 많이 해서, 양이 많아져서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아묻따 궁금한 것을 마구 물어보는 자신감이 생겨서 배우는 것이 많아졌다.
나의 높아진 자신감과 자존감은 영어 회화를 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빛을 발했다. 대하기 어려운 직장 상사에게도, 부장님 앞에서도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게 편해졌다. 가끔은 '나는 공부하는 똑똑한 여자야~ 아무도 날 무시할 수 없지.'라고 자아도취에 빠지곤 한다.
실력은 직선으로 상승하는 게 아니라 계단형으로 올라가는 거라는 말이 있듯이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해도 실력이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많다. 아니, 거의 모든 날 그런 느낌이 든다. 하지만 100일 중에 하루쯤은 '아, 나는 하면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다양한 꿈들을 불러온다.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해외 파견에 대한 꿈이 손에 닿을 것만 같았고, 언젠가 직장을 박차고 나가 배낭을 메고 자신 있게 세계 여기저기 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물론 내 곁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기에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겠지만 먼 훗날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 덕분에 하루하루가 보람스러웠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은 답답하고 지루해진다. 나의 삶이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런 감정들이 우리를 덮친다.
'오늘 하루도 똑같겠지.'
'내일도 똑같겠지.'
'앞으로도 똑같겠지.'
나에게 주어진 길이 하나뿐이라는 걸 발견했을 때 인생이 뻔하게 느껴진다. 혹은 나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은 주변 사람들을 볼 때 기운이 쏙 빠진다. 하지만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유롭게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들판 위에서, 바닷가에서, 산 정상에서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먹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낀다.
나의 수첩에는 빼곡하게 여행 가고 싶은 곳이 적혀있다. 나름 그곳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는 상상도 해봤다. 영어 공부는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나에게 항상 그렇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영어 회화를 꾸준히 연습하다 보니 미드나 영드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자막을 완전히 없애고 볼 때가 있는데 한국어 자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영상에 빠져들게 되더라. 번역된 것을 보는 것보다 원어로 볼 때 배우들의 감정선과 전체적인 스토리가 훨씬 더 깊게 느껴졌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미드의 원서를 책으로 사서 읽었는데 드라마 내용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는 게 아주 흥미진진했다.
"아~ 뭐야. 책이랑 결말이 완전히 다르네. 남자 주인공이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었어? 웃기네 정말."
번역되지 않은 미드나 원서를 보게 되면 오직 나만 아는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묘하게 다른 외국문화가 느껴질 때면 신기하기도 하고 자꾸만 더 알고 싶어 진다. 가끔 미드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영어로 된 편지글, 메모, 문서들을 볼 때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서 작품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 공부에 올인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게 영어는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나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전혀 쓸 일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때려치우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수시로 들려오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영어를 한다고 해서 먹을 게 생기지도, 돈이 생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참으로 복잡 미묘해서 물질적인 게 아닌 정서적인 만족감, 성취감 그리고 희망으로도 행복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앞으로도 나는 내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꾸준히 영어공부를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