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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r 25. 2022

친정 엄마를 울린 남편의 한마디

  일요일 오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반갑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너 어쩜 엄마한테 그럴 수 있어?"

  "응? 무슨 말이야, 엄마."

  엄마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였다. 나는 영문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친정에 오기 싫으면 억지로 오지 마. 엄마도 마음이 불편해. 어제처럼 그렇게 불편한 표정 지을 거면 오지 말란 말이야."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어제 남편과 함께 친정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사를 하는 내내 내 표정이 계속 좋지 않았었다. 그저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었다.

  "엄마, 어제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었잖아."

  "아니야. 넌 항상 엄마한테 쌀쌀맞았어. 억지로 친정에 오는 거면 더 이상 오지 마...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 다는 걸 이제 깨달았어."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어제 서운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하지 그랬어!"

  "사위도 있는데 그 자리에서 어떻게 대놓고 말하니?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살갑게 대해주면 어디 덧나?  엄마는 오랜 시간 동안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얘기하는 거야. 이제 친정엔 오지 마!"

 "......"  

엄마는 잔뜩 언성을 높여 얘기했고 가슴에 비수가 되는 말들을 내뱉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귓불까지 새빨개졌다. 엄마가 갑자기 왜 이렇게 돌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엄마 진짜 너무해. 엄마 말대로 두 번 다시는 친정에 안가."

나는 전화를 끊고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다. 서운한 게 있어도 바로바로 말하지 않고 가슴에 쌓아두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다.



  

  친구 같았던 엄마와 나 사이가 멀어진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아빠: 딸~ 엄마가 속상하다고 밤마다 울어. 딸이 먼저 연락해서 죄송하다고 해.

나: 연락하지 말라고 매몰차게 말한 건 엄만데... 상처받은 건 저예요. 

아빠: 그래도 자식이 먼저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엄마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걸 알지만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 매번 서운한 감정들을 쌓아놨다가 폭발하는 엄마에 대한 미움이 남아있었다. 보다 못한 남편도 나를 달래며 말했다.

  "장모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나 아직 그럴 기분이 아니야."

  "그래도 부모님이잖아..."

 

  나는 심호흡을 몇 번하고 남편의 말에 따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왜."

  엄마의 말투는 차갑고 딱딱했다. 

  "내가 잘못했어. 엄마 화 풀어."

  "화 안 났어. 자식 낳아봐야 다 필요 없으니까."

   나는 엄마가 상처 주는 말들을 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이후에 엄마에게 몇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얼어붙은 우리의 관계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엄마에게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와의 냉전은 꽤 오래갔다.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웠지만 더 이상 누군가와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사는 천사와 악마는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싸웠다. 

천사: 엄마가 천년만년 건강하실 줄 아니? 너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후회해. 

악마: 아니야. 일방적으로 서운한 감정을 쌓아두다가 폭발하는 습관은 변하지 않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천사: 정말 불효자식이구나! 그러다가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마.

악마: 자꾸 상상하기도 싫은 먼 훗날의 얘기를 들먹이지 말란 말이야!

  나는 뒤엉켜서 싸우는 천사와 악마를 떼어놓고 검은 박스 안에 둘을 가둬버렸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당분간 너희 둘은 밖으로 나오지 마.'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엄마는 서서히 마음을 풀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았다. 친구 같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사위가 꽃을 보냈네. 이게 무슨 일이야?"

  "꽃?"

  나는 곁에 있던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엄마한테 꽃 보냈어?"

  그러자 남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장모님한테 보냈어."

  남편은 엄마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장모님~ 지난번에 저희가 식사만 하고 금방 떠나서 많이 서운하셨죠? 죄송해요. 저희가 다음 주에 다시 찾아뵐게요."  

  엄마는 목이 메어 말했다.

  "아이고... 사위.... 고마워... 눈물이 다 나네... 꽃이... 참 예쁘다."





  이튿날 아빠 말하길 엄마가 그날 남편의 말을 듣고 고마워서 집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엄마는 활기를 되찾았고 나와 엄마는 예전과 같은 친구 같은 사이로 되돌아왔다.

  "부모는 자식이 전부야. 이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줘."

  "미안해 엄마. 다음부터는 서운한 거 생기면 바로바로 말해줘. 그래야 내가 고치지."

  "엄마가 워낙 표현하는데 서툴잖아.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게."




   나이가 들수록 굳세고 단단하게만 보였던 엄마가 서운해하는 일들이 늘어간다. 반면에 자식들은 일과 직장에 치여 더욱 무덤덤해진다. 하지만 해결의 열쇠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것은 '더욱 자주 찾아뵙고, 더 많이 얘길 나누겠다는 살가운 말 한마디'였다. 


또 찾아뵙고 더 오래 있다 갈게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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