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학군, 나쁜 학군에 관하여
"여보, 우리 **동으로 이사 가자."
"지금 대출 갚기도 벅찬데 뭔 소리야?"
"지영이의 미래를 위해서 학군 좋은 데로 가야 돼. 여기 주변은 애들도 그렇고 학원도 별로잖아."
"초등학교에 무슨 학군 타령이야. 잘하는 애는 어디서든 잘하게 되어있어."
"학군 좋은데로 가면 집값도 오른대. 가자. 가자아~. 내 소원이야."
"시골에서도 서울대 갈 애들은 서울대 간다니까.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는 말 몰라? 그리고 내가 볼 때 거기 아파트 가격은 거품이야. 그러니까 그만 얘기해."
나는 작은 도시에서 자랐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까지 인 서울 대학교에 가지 못했다. 만약에 내가 대도시의 명문 학교에 다녔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초등학교에서부터 학군을 따라 이사해야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
우리 애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보내고 싶은데.. 학군 따라 이사 갈까, 말까.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군이란 무엇일까? 어느 누구도 '좋은 학군'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다. 아마 우리 아이의 성장 가능성을 최대로 올려주는 학교가 좋은 학교. 그 학교가 속해있는 학군이 좋은 학군일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좋은 학군'을 시내 중심가에 비싼 아파트가 끼고 있는 학교라고 정의하고, '나쁜 학군' 외곽에 집값이 싼 아파트와 빌라촌에 배정된 학교라고 정의한다고 해보자.
이 두 학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필자는 누구나 입을 모아 칭찬하는 좋은 학군의 학교. 비싼 아파트가 둘러싼 학교에 근무해보았고 누구나 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학교. 가망이 없다고 하는 학교에도 근무해보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을 관찰했던 교사로서 위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내고자 한다.
(1) 학업성취도
사실 어느 초중학교든 최상위권 학생들은 다 잘한다. 필자가 교육청 영재원의 강사로 활동하면서 광역시내 모 든 학교의 영재아동을 살펴본 결과 학군과 관계없이 잘하는 애들은 잘했다. '원래 잘하는 영재아'들은 학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 '공부할 애들은 어디서든 잘하는 거고, 아닌 애들은 어딜 가든 안 하는 거지.'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학군이 좋을수록 학습 부진아 수가 현저히 적어지는데, 이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분명한 메리트가 된다. 학습 부진아의 수가 중요한 이유는 학습 편차가 작을수록 심화 학습이 더 잘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모둠 학습을 할 때 역할 배분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진다. 그래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수업의 질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또한 좋은 학군 주변에는 유명한 학원들이 즐비해있어 교육경쟁이 치열하다느 점에서 학습 경쟁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도 장점으로 뽑을 수 있겠다.
(2) 선생님
다음으로 선생님의 능력차 대해 이야기해보자. 대부분의 학부모님은 좋은 학군의 선생님은 수업을 잘 가르치고, 나쁜 학군의 선생님은 못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특수목적고, 사립고를 제외한 일반 공립학교에 한정 지어 얘기하자면 학군에 따른 선생님의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교원 배정은 교원 인사이동 기준안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급지 점수'가 있는데 선호 학교일 경우 급지 점수가 낮다. 그래서 비선호 학교에 오래 근무하면 점수를 모아 선호 학교에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선호 학교에 근무하면 점수가 낮아 다음 이동 시 비선호 학교로 배정된다. 한마디로 모든 교원은 공평하게 로테이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학군에 따른 교원 능력차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련 농어촌 학교는 승진 특별 가산점이 있기 때문에 연구 점수가 높은 선생님들이 몰린다.
그러니까 '좋은 학군에는 나쁜 학군보다 좋은 선생님이 배정된다.'라는 말은 거짓이다. 아마 이런 유언비어가 생기게 된 배경에는 학생들의 수업 태도가 '교사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했느냐 아니면 좌절하게 했느냐'의 문제가 포함됐을 것이다.
(3) 아이들의 인성
좋은 학군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인성이 좋다'라고 말하기엔 비약이 많은 것 같다. 학군이 좋다고 해서 왕따가 없는 것도 아니고, 비속어를 사용 안 하는 것도 아니며,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친구를 괴롭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모님의 집안, 재산, 명예를 들먹이며 친구들을 무시하는 게 습관인 아이들도 있고, 이기심이 앞서 배려할 줄 모르는 아이들도 있으며, 부모의 배경만 믿고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아이도 있다. 필자는 오히려 안 좋은 학군에서 보석같이 빛나는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을 더 많이 봤다 그러니까 어딜 가든 '어떤 친구와 친하게 지내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좋은 학군이라고 하더라도 인성이 나쁜 친구들과 사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만약 제일 가까운 친구가 '돈이 최고지. 우리 엄마는 나 하고 싶은 거 아무거 나하래. 공부 스트레스받지 말고. 공부하기 싫다. XX(나쁜 말) 너도 나랑 놀자.'라고 한다면 힘들여 보낸 좋은 학군이 한순간에 제일 나쁜 학군이 돼 버린다. 에이 설마, 이런 학생이 있겠나 싶겠지만, 많다. 공부와 별개로 마음이 삐뚤어진 학생들도 참 많다.
차라리 나쁜 학군에서도 인성이 바르고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좋은 학군에서 인성이 좋지 않고 공부를 멀리하는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백배 낫다.
좋은 학군, 나쁜 학군 그 열쇠는 결국에는 우리 아이가 쥐고 있다. 우리 아이가 어떤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잘 살펴보는 것은 영끌 해서 좋은 학군으로 보내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다음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