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판사에서 반가운 메일을 받았다.
올해 초에 투고한 도서를 출간하고 싶다는 답변이 담긴 메일이었다. 이번에 계약을 한다면 나는 한 출판사와 10권가량의 동화책을 계약하게 된다. 나머지 다른 출판사와 계약한 동화책이 5권이 더 있으니 총 15권이 되겠다. 이 과정은 수년에 걸쳐 아주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 그래야 본업에 영향을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 저 또 투고 합격했어요 헤헤ㅎㅎ" 가 아니다.
아직 출간작이 하나도 없는, 작가라기 부르기도 애매한 작가지망생 나부랭이가 한 출판사와 10권가량의 동화를 계약한다는 것이다. 등단 경력도 없고, 출간작도 없고, 유명세도 없고, 가진 것 하나 없는데 출판사에서 나를 계속 믿어주었다는 게 중요하다. 어디에선가 인정받는다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출판사는 작가와 함부로 계약하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 없이 계약금을 턱턱 거는 출판사는 없다. 위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스타 작가와 계약하길 원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지망생은 출판사로부터 원고를 거절당한다. 그러나 내 경우를 보면 아무 경력 없는 평범한 사람도 등단한 작가 못지않게 출간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첫 출간작은 이번해 상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지금 1교 작업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아주 아주 재밌다. 편집자님께서 굉장히 친절하게 봐주셔서 공짜로 작가수업을 듣는 느낌이다. 작가 교실 안 다니길 잘한 것 같다. 수준 높은 개인레슨을 받고 있으니 매일 즐겁다.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드리면 5~6명의 편집자님들이 모여서 회의까지 해주신다. 아무나 겪어보지 못할 귀한 경험이다.
지난달까지 황선미 작가님이랑 작업하셨던 담당 편집자님은 발로 쓴 것 같은 나의 거지 같은 문장을 보고 어리둥절하셨겠지만...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 뭐 어쩌겠는가. 편집자님께서 열심히 도와주고 계신다.
책에 들어갈 그림도 재치 있고 유쾌해서 마음에 쏙 든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인물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잘 표현해 주셨다. 그림작가님은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으신 분인데 허접한 나의 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상상해 보면 머쓱하기만 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문장을 탄탄하게 잘 쓰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다른 사람보다 아이디어를 잘 내는 것뿐이다. 문장공부도 중요하긴 한데 그것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조금 안타깝다. 출판사가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인 만큼 작가는 시장의 수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제를 뽑아 어필해야 한다. 무작정 글을 써내기만 하면 아무리 정성 들여 쓴 글이라도 휴지통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직 출간 전이기 때문에 내가 어떠한 아이디어로 어떻게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면 이렇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동료 선생님께서 그림책 원고를 썼으니 한번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흔쾌히 원고를 읽고 검토해 드렸다.
"선생님, 정말 잘 만드셨네요! 재밌게 읽었어요. 다문화에 대해 쓰신 책 맞죠?"
"다문화요? 제 책이요?"
"네. 다문화가 주제가 아니면 이 책의 주제는 뭐예요? 투고를 하려면 이 책의 장점을 써야 하는데 뭐라고 쓰실 예정이세요?"
"어... 주제는 없는데... 다문화로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책의 장점은.... 음...."
동료 선생님은 말끝을 흐리셨다. 나는 원고를 짚어가며 말했다.
"여기 인물들의 털 색이 다른 것을 다문화로 연결시키고, 다문화 가정인 아이가 어떻게 정체성을 얻어가는지에 대해 쓴 책이라고 어필해 보세요. 바로 투고하지 말고 다문화에 대한 책을 몇 권 더 읽어보시고요."
"아하, 물어보길 잘했네요. 고마워요!"
이렇듯 자신의 글이 가진 장점과 글의 주제를 확실히 뽑아낸다면 휴지통이 아닌 서점 매대에 원고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작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경력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전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 여러분, 저 투고 성공해서 기분이 좋은데 어디 자랑할 데가 없네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조심하게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유일하게 남편한테만 칭찬받았어요. 브런치에는 마구마구 자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