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학습 만화만 읽는 아이는 왜 위험한걸까?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1) 대화 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
나는 학습 만화만 읽는 아이들을 관찰하며 한 가지 특이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글을 읽을 때 시선이 대화 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책을 일을 때 뿐만이 아니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그랬다.
다음은 '지문과 박스를 모두 읽는 아이의 시선'과, '박스만 읽는 아이의 시선'을 추척하여 단순 비교한 그림이다.
이 처럼 박스만 읽는 아이들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한줄씩 차례로 읽기 보다는 습관처럼 대화문이나 박스만 읽고 넘어가는 것이다.
혹시 우리 아이가 학습 만화는 잘 읽는데 시험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면 시선이 박스 쪽에만 맴돌고 있는건 아닌지 점검하길 바란다. 이러한 잘못된 읽기 습관이 반복되지 않도록 글책과 병행하여 읽히고, 문제를 읽을 때 박스와 지문을 차례대로 읽도록 지도해야할 것이다.
2) 글 속의 장면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
"아이에게 어떤 책을 읽혀야 문해력이 높아지나요?"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이 수준에 맞는 책,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는 책을 읽히시고 그게 익숙해지면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책을 읽히세요."라고 말씀드린다. 최근에 출시된 도서 중 '프리워터'처럼 다섯 명 이상의 인물이 각자의 시점에서 서술하는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면 아이의 문해력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아이들은 아무리 복잡하고 긴 글이 나와도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학습 만화만 읽는 아이들은 그림 없는 글 장면을 상상하기 어려워 한다. 등장 인물이 늘어날 수록 누가 누구인지,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림은 보는 순간 한눈에 인식되는데 글은 머릿 속에 장면을 상상해나가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 없는 글 읽기가 어려워 질수록 아이들은 복잡한 글, 낯선 단어가 많은 글을 회피하게 된다. 앞뒤 맥락을 따져가며 낱말의 뜻을 추측하는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부모는 만화책 대신 아동문학 출판사에서 만든 그림책, 또는 그림보다 글의 비율이 많은 학습 도서를 읽히는 게 바람직하다.
3) 만화 속 장면을 따라하는 아이들.
학습 만화는 재미와 학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몇몇 학습 만화가 '등장 인물들끼리 서로의 약점을 놀리는 것'을 재미의 포인트로 잡았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별명을 부르기, 일부러 골탕먹이기는 공공연한 웃음 거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만화 속 장면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가치 기준이 모호한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기에 위와 행동을 '장난'이란 말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습 만화를 구매하는 학부모들도 만화의 스토리를 끌어가는 등장 인물들이 어떤 성품을 갖고 있는지,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지금까지 학습만화만 읽는 아이가 위험한 이유를 살펴보았다. 이런 저런 논란이 많은 학습 만화, 과연 끊어야할 대상일까? 그렇지 않다. 학습 만화는 나름의 장점을 명확히 가지고 있다. 학습 만화를 통해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을 쉽게 접하고, 여러 가지 상식을 풍부하게 늘려나가고 있다. 다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편식하면 탈이 나는 것처럼 한 종류의 책을 읽기 보다는 여러 종류의 책을 다양하게 읽길 바랄 뿐이다. 읽을 거리가 넘쳐나는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풍요로운 읽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