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책을 얼마나 안 읽을까? 과다한 영상 시청으로 인해 문해력과 기초학력이 문제가 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아이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지문이 조금만 길어져도 집중력을 잃어버린다. 긴 글을 읽지 못하니 글밥이 있는 책은 아예 읽지 못한다. 그래서 yes24, 알라딘, 교보문고 같은 대형 인터넷 서점의 아동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1위부터 100등까지 학습 만화가 거머쥐고 있다. 아이들이 문학적 상상력을 기를 기회를 놓친 채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입시의 세계로 들어가는 걸 보면 작가로서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책을 멀리하다 보니 아침 활동 시간은 독서 시간이 아닌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책상에 책은 있지만, 눈은 책을 보고 있지만, 손으로 종이를 넘기고 있지만, 읽은 내용을 물어보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 것이 요즘 아이들의 현실이다.
공부만 잘하면 되지 글을 안 읽는 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고, 직접 작성하는 고급 인재가 되려면 글을 읽는 습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단적으로 같은 의사라고 할지라도 복잡한 논문을 읽고 쓸 수 있으면 의대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학부모도, 교사도, 국가가 염원하는 '책 읽는 아이 만들기' 과연 그 해법은 무엇일까.
1. 그림책부터 읽히자
책을 안 읽는 아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그림책부터 시작해야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해서, 중학생이라고 해서 글책을 읽어야 한다는 고집은 잘못된 편견이다. 문단이 짧고 단어 수준이 쉬운 그림책부터 시작해서 복잡한 글책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야 한다. 무슨 책을 읽혀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이가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게 좋다. 도서관에 데려가서 직접 대출해오게 할 수도 있고, 인터넷 서점에 접속하여 미리 보기로 앞부분을 살펴본 뒤 구매할 수도 있다.
다 큰 애가 그림책을 보는 건 부끄러운 일 아닌가 하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괜찮다. 서른 살 넘은 나도 그림책을 즐겨 본다. 며칠 전에는 안녕달 작가님의 '눈 아이'를 보다가 주책스럽게 눈물이 핑 돌아서 혼났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아이보다 엄마가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모든 장면이 대화로 구성된 만화책과 달리 글과 그림이 서로를 뒷받침하는 그림책에는 여러 가지 상징과 비유가 들어있어서 어느 연령대가 읽어도 나름의 감동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에게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양이다. 짤막한 그림책을 매일 읽는 습관을 들인다면 책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
2. 글자가 큰 글책을 읽히자.
그림책에 익숙해졌다면 그다음에는 8세에서 10세를 대상으로 하는 글자가 큰 책으로 넘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꽝 없는 뽑기 기계', '깜냥'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 '코파츄'도 이 정도 크기에 해당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어른이 읽어도 즐거운 책들이 수두룩하니 수준이 낮으면 어떡하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쑥스럽지만 '꽝 없는 뽑기 기계'를 읽고 울컥해서 눈물 줄줄 쏟아냈음을 고백한다.
일단 그림책에서 이 정도의 글책으로 옮기기에 성공하기만 하다면 거의 다 성공한 것과 다름없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 단계에서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매주 한 권씩 읽는 습관을 꾸준히 들여야 하며 각 가정에서도 책 읽는 분위기 조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분위기는 절대 금물이다. 대신 책의 앞부분을 읽어줌으로써 뒷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다던가, 같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눠 볼 수 있다. 애기도 아니고 몸집이 산만한 애한테 책을 읽어준다니. 너무 낯간지럽지 않으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교사인 나는 마동석처럼 건장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도 책의 앞부분을 읽어준다. 대략 5분에서 10분 정도만 읽어줘도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어떤 날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할 때도 있다.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도 아이들에게는 큰 동기 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3. 심심한 집을 만들자.
사람들은 어떤 때 책을 읽을까. 대체로 자기 전에, 휴가철에, 주말에 책을 읽는다. 업무에 치여 일분일초가 아까울 때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심심할 때 책을 읽는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왜냐하면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드는 숏츠와 게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책 읽는 습관이 들일 때까지 집에서는 인터넷 사용 시간을 제한하고, 컴퓨터는 거실로 옮겨서 공용으로 하고, TV 콘센트 전원을 빼버려야 한다. 이 기간은 대략 6개월 정도면 넉넉하다고 본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빠르면 한 달로 단축될 수 있다.
애니나 만화책을 보는 것에도 제한을 두어야 한다. 10살밖에 안된 아이들이 학교에 [주술 회전]을 가져와 당당하게 읽고 있는 걸 보노라면 뜨악스럽다. 폭력성이 짙은 만화책을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동화는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연령 제한을 확인하지 않고 함부로 만화책을 사주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책을 안 읽는 아이를 위해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나열해 보았다. 언젠가 '집에서 휴대폰만 봐서 걱정이다'가 아닌 '집에서 책만 봐서 걱정이다'라는 말이 들려오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