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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앤선생님 Mar 06. 2021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가는 남편을 붙잡지 못했다.

코로나 백신을맞으러 가는남편을 바라보다.

1. 백신을 맞겠다는 남편을 붙잡지 못했던 이유


"이제 우리 병원에서도 의료진을 대상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어."

"그럼.. 오빠도 맞는 거야?"

"맞아야겠지."

"언제 맞는데?"

"사흘 뒤에."

"응??!!! 안돼 너무 걱정돼. 상황을 보면서 조금 기다렸다가 11월 달에 맞는 건 어때?" 

"아니야. 나는 이번에 맞을래."

"왜 굳이 먼저 맞아? 아직 버틸만하잖아. 백신 맞았다가 잘못되면 어떡해."

"나는 백신 부작용보다 코로나가 더 무서워."

"코로나는 조심하면 되는 거고, 백신은 맞자마자 잘못될 수도 있잖아."

"나는 매일 병원에서 불특정 일반인들을 만나잖아. 선별 진료소도 들어가고 있고. 어쨌든 난 코로나가 더 무섭다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남편은 나에게 코로나 때문에 힘들다고 한 적이 없었다. 하루 종일 kf94 마스크를 끼고 있어도, 수십 번씩 손소독제를 발라도 불만 불평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남편을 붙잡고 오전 내내 마스크를 끼고 수업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했었다. 갑작스럽게 생긴 마스크 피부염 때문에 당장이라도 휴직을 하고 싶다고 징징거리기 일쑤였다.   


남편이 외래진료를 보면서, 선별 진료소에 들어가면서 느꼈을 코로나에 대한 공포감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구나. 힘들었겠다. 남편은 진료실 인근에 있는 코로나 병동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남편의 의견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알았어 오빠. 근데 어떤 백신인지 알아? 화이자야?"

"아니, 아스트라 제네 카레. 우리 병동 몇몇 간호사들은 먼저 맞았어. 코로나 중점 병원 의료진들은 대체로 화이자를 맞는 거 같긴 하더라"


나는 내심 남편이 화이자를 맞길 기대했지만 남편이 맞을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였다. 


"먼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간호사들은 괜찮았대?"

"당일 근육통이 있어서 조퇴했다고 하더라. 다음날부터 괜찮았대."



남편은 백신을 맞겠다는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주말부부라서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과로하다가 컨디션 저하로 백신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나는 남편 가방에 항히스타민을 챙겨주었다. 항히스타민은 일반적인 알레르기약의 성분인데 먹으면 나른하고 졸리게 된다.


"가방에 항히스타민 넣었어. 혹시 전날 잠이 안 오면 이거 먹고 푹 자. 컨디션 조절이 제일 중요한 거 알지?"


남편은 백신을 맞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음 주 주말에 올라오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백신 맞을 생각 하니까 떨려?"

"어.."












2. 내 자식은 의대에 보내고 싶지 않아.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우연히 메가스터디 사장 손주은의 강의를 보게 되었다.


 '앞으로 미래에 망하지 않을 전문직이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의사이다. 그래서 전국의 모든 학부모들이 애를 의대에 보내려고 기를 쓰고 매달리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빠진 게 있다. 전문의가 되려면 얼마나 오래 수련을 받아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가족의 희생이 필요한지, 환자를 진료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 이후의 삶이 행복한지에 관한 얘기가 빠졌다. 


전문의가 되려면 의대 6년+인턴 1년+레지던트 4년+군의관 3년이 기본코스이고 경우에 따라 펠로우를 하면서 1-2년 더 수련을 받는다. 우리 남편의 경우 펠로우를 1년 해서 수련을 끝내기까지 총 15년이 걸렸다. 그 과정이 워낙 고되고 힘든 데다가 엄격한 서열관계에 따른 회식문화의 영향으로 폭음과 폭식은 기본이요, 푸석해진 피부와 탈모는 옵션으로 따라온다. 게다가 운동할 시간은 없는데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여자 전공의들은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며 버틴다고 한다.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집에 오면 쓰러져 자는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우리 시어머니께서는 묵묵히 아들의 자취집에 찾아가 냉장고를 채우고 빨래를 해주시곤 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우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더 이상 빨래를 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너무 기뻤다고 하셨다. 


모든 수련이 끝나면 이제 행복해지는 일만 남은 걸까? 그렇지 않다. 남편은 주말마다 학회에 참석해 공부를 했다. 수술을 앞둔 날에는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자고 뒤척였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일주일 정도 외래진료만 보다가 수술을 하는 날에는 손이 달달 떨리고 하루 종일 긴장된다고 했다. 수술이 잘못되면 환자가 소송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주말 내내 주중에 수술했던 입원환자의 상태를 체크하고 걱정한다. 


그래서 남들은 의대에 목을 매던 말던, 내 자식은 의대에 보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빠, 우리 자식은 의대에 보내지 말자. 코로나 겪어보니까 진짜 아닌 거 같아."

"왜? 가고 싶다고 하면, 능력이 된다면 보내야지. 의사만큼 보람된 직업이 어딨어? 배운 기술을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이고 좋은 직업이야. 자부심이 있지"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럼 뭐 시키고 싶은데?"

"음.. 몰디브 리조트에서 일하는 리셉션 직원이 되면 좋겠어."

"그건 니 꿈 아냐?"

 "응. 맞아^^"

"애가 가고 싶어 하면 보내야지. 니 꿈을 투영하면 어떡하냐? 너도 결국 다른 엄마들하고 다를 바 없다는 얘기야."



대화를 하다 보면 남편한테 밀릴 때가 많다. 아니, 배울 점이 많다. 

선별 진료소에서 근무하거나 코로나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든 의료진들은 남편이 말하는 그  '자부심' 그리고 '보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거겠지. 


내 자식은 의대에 보내고 싶지 않은 것. 이 마음이 내가 가진 작은 그릇의 크기이고 

백신을 맞고 환자를 진료를 볼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의료진들의 넓은 그릇의 크기라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오빠 잘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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