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여행에 대하여

by ㄹㅏㅇ

이번에 모처럼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여행을 갔어. 마침 네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여름방학을 하면서, 아빠도 같이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났단다. 미리 계획했던 휴가도 아니었고, 사람들이 휴가를 많이 떠나는 시기에 너를 데리고 멀리 가기는 쉽지 않았다. 너는 아기 때부터 정말이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서 차에 오래 앉아있질 못했거든.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인천으로 가기로 했어. 이유는 오직 단 하나. 너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단다.



바다를 처음 본 너의 반응은 아빠를 기대한 것 이상이었단다. 숙소에 도착해서 커튼을 열고 처음 보이는 바다 풍경을 볼 때부터, "우와~" 하는 너의 반응은 '왜 진작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할 정도였어.


장난감으로 가득 찬 집에 비해 네가 가지고 놀게 아무것도 없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너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바쁘더구나. 화장실과 방 한 칸이 전부인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을 너는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부지런히 왔다 갔다 했단다. 생각해보면, 지난 전주 여행에서도 너의 반응은 비슷했던 것 같구나. 처음 가본 낯선 공간 안에서 너는 보이는 것마다, 그리고 발 딛는 곳마다 감탄하며 좋아했었다.


평소에도 너는 유난히도 밖에 나가는 걸 좋아했었다. 아빠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나가자'라는 말은 정말로 신기하게도 잘 알아들었지. 이유모를 너의 칭얼거림을 참지 못하고, '서아야- 우리 나갈까?' 하면 울음을 뚝 그치고 현관 앞에 앉곤 했단다. 어쩔 땐 유모차를 타고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또 어떤 날은 카페에 가서 네가 좋아하는 토마토 주스를 시켜 나눠먹곤 했다. 그런 너를 보며 아빤 여행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더구나. 잠깐의 집 밖으로 나서는 외출마저도 너에겐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었겠구나.


낯선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여행
너에겐 모든 것이 여행이었겠다


네가 좀 더 자라면, 더 이상 바다를 보고서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낯선 공간에 왔다는 이유로 신이 나서 숨바꼭질하듯 뛰어다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집 밖에 나가는 것 정도는 너무 식상해서 당연하게 여겨질 게다. 처음의 그 새로운 느낌은 곧 익숙함이 될 거고, 여행이란 늘 지내는 장소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말이 될 게다.


아빠는 너의 여행에 되도록 많이 함께 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아빠와 함께 보다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더 좋아질 게다. 때로는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아마도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즈음인 스무 살 무렵이면, 틀림없이 그럴 거라 아빠는 미리 예상을 해본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서, 아빠는 말을 아끼게 되는구나. 어디를 가는 게 좋겠다느니- 누구와 함께하면 좋겠다느니-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잔소리가 될 테니 말이다. 그저 딱 한 가지 아빠가 네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네가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아빠는 그랬단다. 처음엔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여행을 못 간다고 생각했어. 돈이 없어서. 비행기표 값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돈이 얼마 이상은 필요하겠다고 미리 계산하고 준비를 했지. 그때는 경제적인 여유만 생긴다면 충분히 여행 갈 수 있다고 여겼어.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고 나니, 이제는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간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할 일이 많아서. 여행을 다녀오기 위해서는 시간이 얼마 이상은 필요하다고 예상을 하고,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 휴가 계획을 세웠지. 다른 사람들과 일정을 맞추거나 때로는 서로 겹치지 않도록 피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이 여행을 못 가는 이유가 됐다.


하지만 정작 아빠에게 가장 부족했던 건 바로 마음의 여유였어. 네가 태어난 이후에 함께 떠났던 여행을 생각해보니 그렇더구나.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일정이, 너와 함께 하면서 여행이 됐다. 너의 어린이집 방학 동안 무얼 할까 고민하던 게, 곧바로 여행으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었는데 그 마음을 먹는 게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여행이었을 너와 함께 하면서
아빠도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된 셈이었다


언젠가는 너의 일상이 이제는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될 그 순간이 오더라도,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 되길-

오늘 우리의 여행을 기념하며, 아빠는 앞으로의 너의 여행을 지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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