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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Oct 31. 2022

나는 어머니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엄마는 올해 83세가 되셨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수십 년 다니셨던 길에 주저앉으시고 집을 못 찾아 경찰이 연락을 하고, 새벽에 배회하시면서 온갖 잡동사니를 주워 오기 시작하시면서 자녀들이 모시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결국 요양원에 가시게 되었다. 엄마는 수시로 전화를 하신다. 새벽에 하실 때도 있고 5분마다 하실 때도 있지만 언제나 전화를 처음 하신양 안부를 물으신다. 나는 화내지 않고 늘 친절하고 상냥하게 전화를 받으려고 애쓰고,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는 적은 없다.

엄마는 농사꾼 집안에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셔서 동생들을 다 키우시고, 6살 때부터 밥을 하며 학교를 다니셨다고 한다. 딱히 요리를 나의 입맛에 맞게 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국수랑,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이런류의 음식을 잘하신 걸로 기억된다.

  하루는 저녁시간에 내가 아버지께 엄청 혼나는 일이 있었다. 다 혼나고 아버지께서 '밥 먹으라고' 하시는데 사춘기가 들어선 그때의 나는 자리를 털고 나와야 함에도 그놈의 '국수'는 왜 그렇게 맛있는지, 속으로 엄청 욕하며 그놈의 ' 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음식들이 그립기만 하다.


  엄마는 방학 때만 되면 나를 팔공산 끝자락 외할머니댁에 맡기시고 한 달 뒤에 나를 찾으러 오셨다. 외할머니댁은 우리 집에서 기차로 4시간 가야 했고,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먼길이다. 마지막 버스는 하루에 두대 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이다.

  외갓집은 그때 복숭아 과수원을 하셨고,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다가 썼다. 발에 치이는 게 복숭아여서 실컨 먹기는 했다. 논두렁에 꿀 복숭아라는 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실로 그 맛은 기가 막힌다.

  외할머니는 허리가 굽으셔서 내가 가끔씩 걸으실 때 허리를 밀어 드렸다. 장날이 서는 날이면, 그런 허리로 두대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시고 밭에서 딴 호박이며 깻잎이며, 가지며 온갖 나물을 갔다가 파시고 돌아오셔서, 손주들 용돈을 주시곤 하셨다.

  한 일주일은 견딜 만 한데, 그런 촌동네에서 한 달을 지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노릇이라 늘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엄마가 오시면 눈칫밥 먹던 나도 이제 기세가 등등해진다. 엄마는 외갓집에서 이것저것 챙겨주신 모든 것을 또 이고 지고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가신다. 가는 길에 차로 40~50분 거리에 있는 큰 이모네 집에 들르는 경우도 간혹 있었는데, 거기는 그래도 외갓집보다는 분위기가 좋아서 운이 좋으면 새 옷도 한벌 얻어 입고, 용돈도 두둑이 받기도 다. 거기서도 엄마는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모든 것을 다 챙기시고 길을 나서신다. 머리에도 이고 어깨에도 메고 손에도 들고 하시면서 말이다.


  나는 늘 엄마를 생각했다. 외갓집에 갈 때 엄마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늘하늘 거리는 예쁜 원피스에 핸드백 가방을 옆에 끼고, 삐딱 구두를 신고 나를 손에 잡고 가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엄마는 교육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학교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셨는데, 1남 3녀 중 막내인 나를 36살에 낳으시고, 학부모들 중에도 나이가 많으셨고, 행색 또한 볼품이 없으셨다. 그런 엄마가 학교에 오시면 나는 창피했다. 학교에 안 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엄마는 빠지지 않고 학교에 오셨다.

  하지만, 나는 그때 엄마한테 '창피하니 오지 마세요'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런 말을 입밖에 내는 일은 없었다.


  나도 36살에 첫애를 낳고 38살에 둘째를 낳았다.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하지만 다른 점은 학교에 갈 때 나는 늘 새 옷을 산다는 점이다. 과하지 않을 만큼 멋을 내고 아닌 척하며 학교에 가곤 다. 학교상담이 두 번밖에 없는 것이 나는 늘 아쉽다. 서너 번은 되어야 새 옷도 많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는 교회 권사님이시다. 자녀들에게 교회 다니기를 강요하셨고, 한 교회를 수십 년간 섬기셨다. 교회의 예배란 예배는 모두 참석하시고, 365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새벽마다 눈물로 가족들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손수건은 항상 젖어 계셨다. 성경책은 매일 읽으셔서 너덜너덜하시고, 성경 필사하신 것은 몇 권이나 되신다.

  나도 교회를 다니고 아이들도 교회를 나가지만 나의 어머니처럼 강요는 하지 않는다. 새벽기도는 어쩌다 한번 나갈까 말까 한다.

  하지만, 나는 기도한다. 어머니를 위해서 기도드린다. 남은 여생 평안하게 계시다 주님 곁에 무사히 가시게 해 달라 매일같이 기도드린다. 자녀들을 위해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도 내 가족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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