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로 비켜가던 차의 차 문이 열리더니 운전사가 내렸다. 희끗희끗하신 것이 60대는 돼 보이는 여자분이다. "아니 여기 좀 봐. 나갈 수 있게 생겼나. 기둥 때문에 못 나가." 하며, 시비조로 반말이다. "제가 나가면 들어오셨어야지요"
여기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다. 나는 나가는 길이고 저.. 여사님은 들어오시는 길이다. 뭐가 그리 급하셔서 나가는 차를 보고도 차를 밀고 들어오셨는지 당최 이해하기가 힘들다. 운전이라도 잘하시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러지도 못하시니 이거는 답이 없다. 차에서 내리셔서 나에게 좋은 말로 차를 빼 달라고 하셔도 될 일을 반말을 하시면서 들이대시는 모양새가 이건 싸우자는 것인가. 순간 부아가 확 치밀어 오르는 것이 나도 지기 싫은 오기 같은 것이 발동했다. "저에게 반말하시고 소리 치신 거 사과하세요.. 그러기 전에는 못 빼요" 순딩 순딩하던 새색시도 아줌마 13년 차가 되면 내공이 쌓이고 팔뚝보다 강한 힘이 생기는 법이다. 낯짝 또한 예사롭지 못하다. 나는 차의 시동을 꺼버리고 안하무인 하게 행동했다. 그분은 바쁘신지 발을 동동 구르시다 나에게 결국 사과를 하셨다. "미안해. 됐지?" '아니 이게 사과야? 시비야?' "사과를 누가 그런 식으로 합니까?"
나는 아예 차 문을 닫아 버렸다. 그 여사님은 지나가던 행인들을 붙들고 나를 완전히 죄인 취급하며 하소연을 하신다. 나는 졸지에 어른도 못 알아보는 괘씸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지금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붙들고 제 얘기 안 좋게 하시는 거 이거 다 명예훼손인 건 아시죠?"
그 여사님은 나의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마침 지나가시던 중년 남자 한 분이 중재를 하고 나섰다.
"한 동네 사는데 좀 이해해 주시죠? 반말하시고 막무가내 셔서 기분이 좀 상하셨나 본데 할머니들이 다 그래요.. 젊은 사람이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나는 억울하고 분했지만 차를 뺐다. 분한 속을 참으려니 운전하며 식식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애꿎은 운전대만 노려보았다.
#2
아이들 자주 다니는 병원에 갔다. 여기도 주차하기가 사악하기 이를 데 없다. 비까지 오는 데다 이미 차는 만 차이다. 어째 어째 해서 주차를 하고 진료를 본 후 집에 가려고 차를 뺐다. 그런데 머리부터 디미는 차가 있는 것이다. 제발 좀 나가면 들어오란 말이다. 거기 주차장은 약간 경사에 비탈이 있어 나갈 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비탈진 면에 바닥을 다 긁히기 일쑤다. 그래서 최대한 멀리 원을 돌아 차를 빼야 한다. 나가기도 전에 이미 차가 들어와 버린 바람에 나는 또 이도 저도 못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나가려 시도는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차 바닥이 긁히는 것이다.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 내 차가 다 망가지게 생겼는데 어쩌라고. 내 뒤로 차들이 나가지 못하고 줄줄이 사탕처럼 줄지어 섰다. 이번에도 보다 못한 한 분이 중재에 나섰다. "뒤에 차가 못 나가고 있으니 차 좀 빼주시죠." '난들 안 빼주고 싶겠냐고. 내 원 참.'
아이들을 태우고 비도 오겠다 뒤로는 차들이 빵빵 거리고 이런 사면초가도 없으리라.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차를 뺐다. 왜.. 왜.. 왜.. 양보를 안 하나 말이다. '아.. 씨 ×××' 욕이 저절로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엄마, 괜찮으세요?" "그럼 괜찮지." 애써 담담한 척한다. 집에 와서 커피믹스 3봉을 타서 벌컥벌컥 마신다. 벌건 대낮에 술을 마실 순 없지 않은가. 설거지를 하면서 나는 또 식식댄다. 우리는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이 변한다. 이것은 필시 무언가에 씌어서 그렇다. 조금씩만 양보하면 좀 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을 텐데 나부터도 실천하지 않는다. 양보하고 사과하면 뭔가 모질이 느낌, 손해 보는 느낌, 같은 것은 이 가을 훨훨 저 머나먼 아무도 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 정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