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르릉" 찰칵, "네, 감사합니다. 청당 어학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애들 레벨테스트받고 싶은데요. 가능한가요?" "네, 어머니. 몇 학년인가요?"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인데요." "언제가 편하세요? 내일 저녁 6시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요. 내일 뵐게요."
나는 중학교에 올라가는 아들 녀석이 허구한 날 방바닥만 긁으며 시간을 때우는 모습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두 군데 정도 영어학원에 전화해 레벨테스트 예약을 잡았다. 아이들은 머리털이 난 후 큰 영어 학원 문턱을 처음 밟게 되는 날이 된 셈이다. 학원에 가서 시험을 본다 하니 긴장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엄마, 못 봐도 혼내면 안 돼요." 하면서 나에게 여러 번 신신당부를 하며 다짐을 받아 내었다. 시험을 본 후 홀가분 한지 학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다른 아이들 수업하는 것을 구경 다녔다. "아, 좋다. 엄마 저 여기 다니고 싶어요. 재미있어 보여요." 아이들은 원어민과 하는 수업에 제일 먼저 관심을 보였다.
잠시 후 나는 시험 결과지를 받아 들고 원장실에 들어갔다. "애들 혹시 학원 어디 보내셨나요?" "영어 공부방에 다녔어요. 한 3년 정도요" "지금 레벨은 이렇고요. 큰애는 입시전문반에 넣으시면 되고 작은 애는 원어민 반에 넣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용은 입시전문반은 28만 원, 원어민 반은 40만 원입니다. 교재비 별도이고요." "와 원어민 반이 비싸네요." "원어민 선생님 거주비하며 월급 하며 꽤 나가서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
두 번째로 예약되어 있는 영어학원에 갔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좋아 보였다. 테스트가 끝난 후 다시 상담이 시작되었다. "어머님 그래서 원비는 42만 원씩입니다. 교재비는 별도이고요." "아. 네. 생각해 보고 다니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엄마 저는 첫 번째 학원이 좋아요. 어디 결정하셨어요?" 아이들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한 아이당 40만 원이라니.' '영어 학원비가 이렇게 비쌌나?' 나는 너무 고민이 되었다. 한 달에 80만 원이 지출되니 1년이면 960만 원이다. 각종 경비까지 합치면 1년에 돈 천만 원이 우습게 나가는 꼴이 된다. 그런데 학원마다 아이들로 인산인해다. '혹시 학원들이 담합했을까? 이 근방은 학원비가 다 이렇다는 건데.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고는 하나 이렇게 비싸다고?'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전화를 몇 군데 더 돌려 보니 30만 원만 되어도 '여기는 좀 싸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남편이 도대체 돈을 얼마를 벌어 와야 맘 편히 보내고 싶은 학원을 돌릴 수 있는 건지. 하기사 내 주변 엄마들 생각해 보니 노는 엄마들이 없다. 공장이며 알바며, 애들 학원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 중인 걸 나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럼 나는? 결혼도 늦게 해. 애도 늦게 낳아. 더군다나 아직 초딩이고 공장을 다닐 형편도 못 되는 나는 하루에 글을 몇 편을 써대야 하는 거지? 그나마 이거라도 하고 있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할 지경이다. 나도 내일은 인력시장을 좀 기웃거려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