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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Jan 25. 2023

속에서 천 불이 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2편


  성호는 한참이 지나서야 일어났다. 그 와중에 몇 가지 검사를 더 했다. 의사는 성호의 소견서에 '뇌진탕'을 추가로 더 적어 넣었다.
  아마도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다.

  "일어났어? 큰일 날뻔했다. 조심 좀 하지. 몇 살인데 넘어지니?"
  나는 어떻게 하다 넘어졌는지 궁금증을 듬뿍 담아 성호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하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우성호 학생 보호자분이신가요? 주치의 선생님께서 잠깐 뵙자고 하세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간호사를 따라 간 나는 간호사 데스크로 안내되었다.

  "우성호 학생 보호자분이신가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엄만 데요."
  "혹시 왜 넘어졌는지 얘기 안 하던가요?"
  "피곤한지 그냥 미끄러졌다고만 하더라고요. 왜요. 무슨 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다른 문제는 아니고요. 넘어진 것치고는 너무 멀쩡해서요. 어디 부러진대도 없고 타박상에 뇌진탕은 조금 쉬면 좋아질 거고, 입원까지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경과는 지켜보아야 하니 당장 집에 가시지 마시고 링거 다 맞고 머리만 한 번 더 검사해 보겠습니다. 이상 없으면 외래로 나오셔서 진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의사가 뭐래?"
  "너무 멀쩡해서 이상하대. 머리만 한 번 더 검사해 보고 이상 없으면 집에 가래."
  성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디 잘못됐을까 봐 깨나 걱정이 된 모양이다.
  "우유 먹다가 먹기 싫어서 바닥에 장난으로 쏟았어요. 거기에 발이 미끄러져 계단에서 넘어졌어요 "
  성호는 나한테 혼날까 봐 개미만 한 목소리로 눈치를 보며 이실직고를 했다. 나는 그 말에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다 안 나왔다.
  하다 하다 이제 별짓을 다하네 하는 생각과 함께, 쏟아진 우유에 다른 학생이 아닌 성호 자신이 다친 것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찰나이지만 하게 되었다.
  "헛헛"
  헛웃음이 다 나왔다.
  "이놈아, 어디 부러지고 다쳐야 정신 좀 차릴래? 아깝다 아까워. 의사 선생님께 주사라도 아주 센 거 놔달라고 해야지. 내가 너 땜에 정말 제명에 살겠니?"

  성호는 미안하기는 한지 얼굴을 이불속으로 속 집어넣었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들었다.
  '그래, 잠이라도 실컷 자라. 자. 아이고'
  나는 열불이 올라와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부채질을 해댔다.

  2시간 후 나는 115만 원이라는 진료비를 계산하고 집에 왔다.
  속에서 천 불이 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말이 아니라 욕이 나올 것 같아 참은 것이다.
  성호가 '우유'에 '우'자만 꺼내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날이 되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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