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오늘은 태양의 역사에 대해 배울 거예요. 태양에 의한 지구온도 변화는 조사해 왔나요? 해 온 친구는 손들어 보세요. 음.. 이다래 발표해 보세요.” “네. 그런데 선생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질문은 수업 마지막 시간에 받을게요. 조사한 것부터 발표해 보세요.” “네. 2272년 지구는 온난화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어요. 그래서 지구의 모든 곳에 자외선 차단막이 설치되었고, 각 나라 별로 자외선 차단 스크린을 통해 온도를 조절하고 있어요. 현재 지구 태양의 온도는 섭씨 65도예요. 그리고 가면 갈수록 지구의 온도는 조금씩 더 높아져 가고 있어요.” 나는 조사해 온 자료를 한껏 소리 높여 과학선생님이 잘 들리도록 말했다. “다래가 조사를 잘해 왔네요. 자, 그다음 차영표 발표해 볼까요?” “선생님 저는 숙제를 못해 왔는데요.” 장난이 심하고 늘 말썽장이인 차영표는 과학선생님의 표정을 세밀이 살피며 혼날까 봐 조심스레 말했다. “차영표는 왜 매번 숙제를 안 해 오나요? 담당 AI 선생님이 누구죠?” “아.. 저.. 그게.....” 영표는 머뭇대며 대답을 못했다. 나는 늘 의기양양 잘난척하는 영표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고것 참 샘통이다.’ “차영표?” 과학 선생님이 화난 표정으로 불렀다. “네” 영표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표는 숙제 안 한 것이 오늘 처음이 아니죠? 선생님이 기억하기로는 벌써 네 번째인데 담당 AI 선생님과 면담해야겠어요. 그리고 벌점 -5점입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킥킥 거리며 좋아했다. “모두 태양의 역사 화면을 보세요. 현재 지구의 모든 곳에는 스크린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어요. 이유는 온난화와 환경의 변화로 더 이상 지구는 살기 힘든 곳이 되었지요. 그래서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갖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스크린도어차단막이 설치되었어요. 스크린차단막이 설치되기 전에 인구의 절반이 태양에 의해 타 죽기도 하고 농작물이 자라지 못해 굶어 죽기도 했어요. 그래서 현재 농작물은 시스템하에 재배되고 있고 바다의 온도도 빠르게 내려가 어류들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양식으로 대량의 어류들을 종류대로 사육하며 먹어야 해요. 또한 최대한 그전과 같은 환경에서 살기 위해 스크린도어차단막 안에서의 온도는 각 나라별 예전의 계절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을 그대로 느낄 수 있지요. 스크린도어는 사건 사고가 아직 많아요.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해요. 여러분들은 아직 어려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보호자의 허락과 정부의 허락이 있어야 해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다음 시간에는 스크린도어 차단막에 대해 배울 거예요. 그러니 스크린도어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해 서술형으로 제출하도록 하세요. 잘 쓴 학생의 리포트는 정부에 들어갑니다. 신경 써서 써오도록. 그럼 질문하고 싶은 학생은 질문하세요.” “선생님 저요.” 나는 얼른 손을 들었다. “네. 무슨 질문인가요?” “선생님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나요? 저는 태양을 꼭 한번 만나고 싶거든요.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가면 태양을 만날 수 있나요?” 나는 정말 태양을 만나고 싶었다. 나는 태양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꼭 한 번 스크린 밖으로 나가 햇님을 직접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태양에게 왜 그렇게 열을 내고 있냐고 왜 활활 타고 있냐고 진심으로 되묻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와 오빠를 다시 되돌려 달라고 따지고 싶었다. 아빠와 오빠는 스크린도어 사고로 죽었다. 그러자 엄마가 아빠를 대신에 그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가 가장 바쁜 시간은 누가 뭐래도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시간은 사고도 가장 많았다. 하지만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시간에는 일반 사람들도 밖에 나갈 수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체되어 사고를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 아빠처럼 일하다 죽는 사람도 많았다. “다래야, 너는 아직 어려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갈 수 없어요. 다음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배울 예정이니 과제를 꼼꼼히 해 오도록 하렴.” 과학선생님은 나의 질문에 무척 당황해하셨다. 그리고 나는 바로 내 담당 AI 선생님과 함께 생활실로 불러 갔다. 그 즉시 나에겐 위치추적 장치가 달렸다. ‘아, 망했다.’ 나는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태양을 만나는 일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야, 이똥래? 너 아까 과학시간에 나 혼날 때 웃었지.” 교실로 들어가니 차영표가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노려보며 다가왔다. 또 시비를 털려고 한다. “야. 이똥래. 너 태양 만난다고 했냐? 히히히 너 태양은 언제 만나냐? 태양이 너 만나나 준대? 타 죽지 않으면 다행인데 아예 아서라.” “영팔이 너 말 조심해. 가던 길이나 가시지. 그리고 니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야. 이번에 5점이나 깎인 주제에.” “니가 나 점수 깎이는데 뭐 도와준 거 있어? 그리고 나 영팔이 아니거든. 이 이똥래야?” “영팔, 야 너나 잘해. 이 땅강아지 같은 게. 너는 키가 그렇게 작아서 태양이 너 볼 수나 있대?” “어휴, 이똥래, 주제 파악이 아직도 안 되네. 그러니 아빠도 오빠도 다 죽지?” “뭐? 이게.” 나는 한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얼굴은 빨개지다가 노랗게 변화는가 싶더니 금세 하얗게 변화무쌍 해졌다. 나와 영표 주변으로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말리는 친구는 없었다. 나는 영표에게 다가가 선방으로 싸대기를 한 대 갈겼다. 영표는 휘청했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나의 빠른 공격에 영표는 당황했다. 하지만 영표도 지지 않고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나는 영표의 공격을 미리 알아채고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것이 더 분했는지 영표는 나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 후 나와 영표는 한데 엉겨 붙어 한 바퀴 뒹굴고 나서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 멱살을 잡고 죽일 듯이 노려 보았다. 친구들은 무슨 좋은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재미있어하며 두 편으로 나뉘어 응원하기 시작했다. “다래야, 밥 안 먹었어? 더 힘껏 쳐봐. 그렇지 그렇지.” “영표 이겨라. 영표 이겨라. 영표야, 남자 자존심이 있지. 절대 지면 안돼.” 그 소란스러운 소리에 담당 로봇 선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그리고 우리 둘을 뜯어말렸다.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는 나와 영표를 가까스로 떼어 놓았다. “이다래, 차영표는 –15점입니다. 그리고 둘 다 20일 출석 정지입니다.” “아, 씨 뭐래. 저 씨땡 로봇이?” “차영표? -5점 추가입니다. 욕 금지입니다.” “아오” 영표는 발로 벽을 쾅쾅 찼다. 그리고 결국 로봇 선생에게 끌려 나갔다. “다래야? 너 괜찮아?” 내 단짝 친구인 수진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기는 한데 20일 출석정지? 뭐래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로봇. 프로그램된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쥐꼬리만큼도 없는 인공지능 무능아들. 그나저나 나는 이제 죽었다.” “그러게, 좀 참지. 차영표 재 원래 저런 애인 거 몰라? 너도 성격 좀 죽이고. 늦겠다. 방과 후 수업 빨리 가자.” 방과 후 수업에 도착하니 내 담당 로봇 선생인 체리가 지금 키우고 있는 토마토를 보여 주었다. 나는 토마토가 태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상이 끝나자마자 체리가 나를 다시 불렀다. 아직 영상을 더 보아야 하는데 내려오라는 것이다. 나는 짐짓 모른 척 내려왔다. “다래야, 너 이렇게 집중 안 하고 자꾸 딴생각할래?” “아니야, 딴생각 안 했어. 나는 태양도 없이 자라는 토마토가 하도 신기해서 태양에 대해 잠시 생각한 것뿐이야.” “또 그 소리. 태양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고 했잖아.” “왜 못하게 하는 거야?” “태양은 너무 위험해. 특히 너한테는 더.” 체리는 나의 생각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학생의 개인 신상은 담당 로봇인 선생에게 실시간으로 모두 입력되기 때문이다. “체리야? 너도 혹시 생라면 좋아하니? 너 그거 좋아하면 내가 좀 갖다 줄 수 있는데.” “아니 나는 그런 거 안 먹어.” 체리는 늘 나보다 한 수 위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할지 단박에 알아채고 선수를 친다.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오늘도 태양에 대해 알아내기는 틀렸다. 나는 딴생각을 하다 들켜 점수가 또 2점이나 깎였다. ‘좀 봐주지 정말 인정머리 없네. 영표랑 싸우고 온 것 다 알 텐데’ 나는 체리가 야속했지만 규정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나는 수진이를 만나기 위해 학교 도서관에서 기다렸다. 수진이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책을 훑어보았다. 흥미로웠다. 수진이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나는 보던 책을 보관함에 담아 두었다. ID카드를 충전하지 않아 빌릴 수 없어 아쉬웠다. 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나와 영표는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거렸다. 친구들은 둘이 언제 또 맞짱을 뜰지 내심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 둘은 아직 휴전 상태다. 그래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같았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늘 예민하게 굴었다. 아빠와 오빠가 그렇게 된 후부터는 잘 웃지도 않았다. 사실 우리 집처럼 스크린도어 사고로 죽거나 돈 때문에 죽거나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내가 이상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늘 불만을 달고 살았다. 나의 아빠와 오빠만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태양에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영표네 부모님과 우리 엄마에게도 전달되었다. ‘위치추적 장치만 아니었으면 태양을 만나도 벌써 만났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분한 마음을 달래 길 없었다. 그래서 혼자 속앓이를 끙끙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시간을 알아내기 위해 자주 엄마가 일하는 회사로 놀러 갔다. 그리고 마침내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시간을 알아냈다.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시간을 재차 확인했다. 나는 스크린 넘어 이글이글 타는 태양을 잠시 노려보았다. 영표보다 훨씬 더 미웠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내일은 밖으로 나가 보리라 다짐을 했다. 나는 드디어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시간에 문 앞에 서 있었다. 문 앞에서 서성이다 말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어떻게 하면 저 스크린도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태양을 만나면 제일 먼저 뭐라고 말할까?' '태양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받아 주어야 할까?' '태양을 만나고 나면 친구들에게 뭐라고 자랑을 해야 폼이 좀 나지?‘ 그러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쯤 문밖으로 발을 한번 내디뎌 보았다.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심장이 너무 요동쳐서 그 소리가 저 멀리 저 멀리 아빠가 계신 곳까지 들릴 것 같았다. 오빠가 옆에 있었더라면 뭐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나는 들어 논 발을 재빨리 뺐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다시 밖으로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그 새 문이 닫혔다.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사람들로 문 앞은 많이 소란스러웠다. 그때 위치추적 장치가 울리기 시작했다. “야, 이다래? 오 너 제법이다.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생판 구라는 아니네.” 영표였다. “너 소문내면 나한테 죽는다.” 이 일이 알려지면 나는 끝장이다. 어른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자 정부에서는 아동들을 특별 관리했다. 때문에 우리 엄마가 가장 곤란했다. “근데 너 태양 봤어? 정말 많이 뜨거워? 계란도 삶기다는데 정말 그래? 눈도 멀고 그런다는데 다래 너 나 보이니? 얘기해 주면 비밀 지켜줄게.” ’아, 없는 얘기도 지어내야 할 판이네. 하필 영표에게 딱 걸릴 게 뭐람.‘ “내일 학교 가서 얘기해 주면 안 될까? 나 지금 똥 마려워서.” 나는 잽싸게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사실 태양은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난 언젠간 태양을 내 눈으로 꼭 보리라 다짐을 했다. 영표에게는 내일 온갖 상상을 동원해 얘기해 주면 그만이다. ’태양 너 딱 기다려. 내가 너 혼내주러 갈 거니까. 그땐 나랑 제대로 맞짱 한번 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