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매일 쓰기

A4용지 세장 10 point 160%

세 가지 물병 -2편

by 글쓰기 하는 토끼


사실 난 착한 마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착한 마녀가 예뻐서이다.

착한 마녀가 나를 찾아올 때 난 마녀가 같은 옷을 입고 온 적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빼어난 미모는 아니었지만, 무슨 화장품을 쓰는지 올 때마다 달라 보였다.

온 얼굴에 반짝이 화장을 하고 온 어느 날, 눈을 떼지 못하게 예뻐서 한 5분간 쳐다만 보고 있었다.


마녀는 그런 나를 못 본 척 시침미를 뚝 떼고 있었다. 은근 그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사람과 마녀가 같으면 안 되지'

라며 마음을 다스려 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만 가는 주름살에, 나의 부러움과 시샘은 높아져 만 갔다.


그런 마녀가 만들어 온 물병이니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

'기필코 저 세 개의 물병을 꼭 손에 쥐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 마녀는 청초해 보였다. 꽃 같은 아름다움이 물씬 풍겼다.

주름 하나 없는 희고 흰 얼굴에 오렌지 빛 립스틱을 바르고 진주 목걸이를 해 한층 더 우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편안해 보이는 베이지색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고급 스러 보였다.

'그 원피스 어디 쇼핑몰에서 사셨어요?' 하고 하마터면 물어볼 뻔했다.


착한 마녀는 그리 쉽게 물병을 내줄 것 같지 않았다. 착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속으로 호박씨를 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건 마녀건 살아 숨 쉬는 건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이건 내 인생의 경험으로 몸소 체득한 것이다. 속내도 쉽게 들통나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온갖 비밀을 품에 품고 있는 사람처럼 비밀스럽게 보여서는 더더욱 안된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착한 마녀에게 물었다.

"물병 한 병에 얼마예요? 얼마면 돼요?"

너무 갖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 나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착한 마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

"어느 물병이 제일 갖고 싶어요?

"꼭 하나만 골라야 하나요?"

"다 드릴 수 있는데 제일 원하는 게 뭔지 궁금해서요."

나는 천천히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마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물병은 보랏빛 물병입니다. 제일 갖고 싶은 물병은 샛노란 물병이고요. 그리고 또 제일 원하는 물병은 핑크빛 물병이에요."

라고 말하자 착한 마녀는 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나는 '큼 큼' 헛기침을 두 번 한 후 마녀에게 다 줄 순 없는지 물어보았다.


"이유를... 이유를 보다 정확히 말해 주세요."

'주기 싫으면 주지 말지 여기서 더 얼마나 더 정확히 말을 해?'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A4 용지 세장에 10 point 160% 간격으로 써내기로 약속하고 마녀와 헤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런 경험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