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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Apr 07. 2023

쓸데없는 배움이란 없다.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2호가 살금살금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무언가 속닥속닥하기 시작했다.

  "엄마, 친구관계가 힘들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책 봐요. 책 보는 게 더 마음이 편해요. "

  "책 보지 말고 친구들하고 쉬는 시간에 놀아야 해. 그래야 사귀지. 먼저 가서 말 걸고 스스로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단다. 사실 인간관계가 제일 힘들어."

  "꼭 그래야 해요?"

  "못해도 한 두 명 정도는 네 편이 있어야 하지 않아?"

  "책 보는 게 더 편하긴 한데 현장 학습이나 모둠활동 할 때 친한 친구가 없어 불편한 건 사실이에요."

  "거봐. 친구 있어야 하잖아. 뭐가 제일 어려워?"

  "지금 이미 그룹이 다 만들어져 이쪽저쪽도 못 끼고 있어요."


  이번에 5학년 올라간 2호는 학기 초 친구 문제로 꽤나 속앓이를 했다. 저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 몇 명과 같은 반은 되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 그룹에 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학교 가기도 싫어했다. 담임선생님과도 상담 때 이 문제로 상담을 오래 하였다.

  그러다 좀 잘 다니는가 싶더니 다시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난 아이에게 좀 더 구체적인 피드백을 해주고 난 뒤, 

  "초등학교는 6년이나 다녀야 하는 곳이야. 네가 4년 아무 일 없이 잘 다녔으면 한 1년은 어려워도 잘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이거든."

하는 말로 마무리를 하였다.


  나는 아이가 하교하면 아이의 얼굴부터 살피며 종종 학교생활은 어떠한지 자주 물어보았다. 오늘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기분이 좋아 보일 길래 무슨 일인지 물었다.

  "오늘 아이들 앞에서 마술 보여 줬어요. 그리고 마술 모임도 만들었는데 6명이나 모였어요. 모임 이름은 <사기마술패거리단>이에요.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그래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친구들 많이 사귈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아요. 내일 마술 도구 챙겨 가야 해요."

  그 말에 나도 마음을 한시름 놓게 되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딸아이의 학교생활이 순탄치 않을까 내심 조바심을 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담임선생님 앞에서 마술 보여드릴 일 있어 보여 드렸더니 엄청 놀라신 일부터 자기처럼 마술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랑 같이 놀았다는 얘기부터 모두 전해 들었다.


  2호는 청소년문화센터에서 6개월간 마술을 배웠다. 저학년 때였으니 말리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맘껏 배우게 했지만 고학년이나 중학생 같았으면 마술 배워서 어따 써먹느냐부터 해서 나에게 여러 가지 잔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그때도 배우고 온 마술을 나에게 보여주겠다며, 연습을 해야 한다며 꽤나 귀찮게 했던 일이었다. 꿈이 마술산데 마술사가 되면 안되나면서 학원을 보내 달라기까지 했다.

  근처 마술 학원이 있어야 보내주지. 사실 솔직히 그땐 마술학원 없는 게 감사했었다.

  청소년 문화센터 마술 수업은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재개강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 났고 2호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가끔 집에서 연습하는 걸로 마음을 달래었다.


  그때 배웠던 마술이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이야. 배운 모든 것은 언젠가는 다 쓸모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배울 수 있을 때 시간 될 때 뭐든 열심히 배우는 것이 남는 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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