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을 빨아 넓게 펼쳐 놓고 널어 놀 마당도 읎으면서 난 이불을 자주 빤다. 옛날처럼 이불 한번 빨려면 한 달 열흘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고 차일피일 미루다 어쩔 수 없이 할 필요도 없다. 발로 꾹꾹 밟아가며 헹굴 때 온 힘과 정성을 들일 필요도 없다.
세상의 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세탁기라는 것이 나의 노동을 대신해 주니, 맘만 먹으면 언제든 날 좋은 날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요즘은 건조기라는 것도 나왔다. 시간 들여 공간 들여 널 필요도 없다. 옆집 엄마 말로는 신세계가 따로 없고 그렇게 보송보송할 수가 없단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마지않는 그 건조기는 아직 우리 집에 없다. 난 발로 꾹꾹 밟아 이불 빨래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참 만족스럽다.
예전 세 살던 집 마당에 짤순이라는 것을 이웃집 아줌마가 들였다. 집집마다 그 아줌마에게 잘 보이며 그 짤순이 한 번 써 보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다. 우리 집도 그 짤순이에 옷을 한번 짜 보고 혀를 내두르며 신기해했다.
일단, 빨아서 짤순이에 짠 그 옷은 그다음 날 말랐다. 정말 급하게 입고 나갈 옷이 있으면 얼마나 고마운 물건이겠는가.
눅눅하고 습기가 많은 날, 비가 오는 날은 일주일이 지나도 빨래가 마르지 않고 말라도 꿉꿉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해가 반짝 뜨고 건조한 대기에 있는 빨래는 얼굴에 옷을 대고 비벼 보고 싶게 기분 좋게 할 때가 많았다.
우리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셨다. 한복집에서 스카우트할 정도였다. 웬만한 바느질은 다 하셨고 이불 빨래 한 날 이불 홑청을 뜯어 깨끗이 빨아 온 방안에 이불을 펼쳐 놓으시고 시침질을 하셨다. 나는 가끔 보송보송 잘 마른 그 이불 위에 노는 걸 좋아했다. 펄쩍펄쩍 뛰며 놀기도 했다. 그럼 엄마는 혹시 바늘에 찔릴까 못 놀게 하셨다. 난 엄마 옆에 착 달라붙어 엄마의 바느질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나가 놀지도 않고 엄마의 이불 꿰매는 모습을 보며 있었다.
내가 이불을 빨 때 이 이불 홑청을 꿰맬 일도 시침질을 할 일도 마당에 이불 널어놓고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도 더더군다나없다. 이불을 못 빨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햇빛에 잘 마른 이불은 그냥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정성스레 이불을 꿰메는 일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깨끗이 빨아 보송보송하게 잘 마른 이불을 덮고 잘, 죙일 일하고 공부하고 돌아 와 내 한 몸 편하게 뉘일 이불을 오늘도 정성스레 내 입김 불어 넣어가며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