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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May 03. 2023

향기는 기억을 되살리고.


  모처럼 1호와 산책을 하게 되었다. 요즘 길거리 곳곳 눈 호강 할 일이 넘쳐 난다. 이쪽저쪽 모든 시선이 머무는 자리에 싱그럽고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넘쳐나고 그에 질세라 꽃들도 한창이다.

  아들과 손 붙잡고 걷다 보니 내 코 끝을 스치는 꽃 향기가 '킁킁킁' 내 코를 벌름벌름하게 했다.

  

  "아들, 꽃향기 너무 좋지? 이거 아카시아 아니야?"

  "아카시아 맞아요."

  우리는 팔짱을 낀 채 어스름하게 해가 넘어가는 시간, 나무에 매달린 하얀 아카시아 냄새에 홀려 가던 길을 멈추고 계속 코를 벌름거렸다.

  저녁때라 그런가 벌이 없다. 토종 아카시아꿀은 사기도 구하기도 힘들다. 아카시아 꽃이 향기를 내뿜으며 버젓이 서 있는데 주변에 날아다니는 벌 한 마리가 없다.

  '거 참 요상하네'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도로가 옆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미치자 그것도 또 합리적인 생각 같아 벌 생각은 이내 접어 두었다.

  

  그 잠깐의 향기는 나를 추억 속으로 데려다주었다. 제일 먼저 든 기억은 엄마가 지어 주신 밥 냄새다.

 사실상 요즘도 갓 지은 하얀 쌀밥만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소한 내 가득한 진한 냄새는 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게 마련이다.

  가끔 한 번씩 아침밥에 올려진 하얀 쌀밥에서 나는 엄마의 화장품 냄새를 나는 정말 싫어했다. 그 냄새가 나면 난 으레 밥투정을 하였다. 엄마는 지레 못 본 척 늘 모른 체 하기 일쑤였다. 그런 날의 나의 땡깡은 가히 하늘을 치솟듯 요동을 쳤다. 그러다 아부지에게 한대 쥐어 박고는 대강 끝이 났다.


  나는 한번 더 심호흡을 했다. 향기가 내 어디 저 먼 나의 기억을 끄집어내길 바라는 양 더듬더듬 또 내 여고 시절 등나무 아래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여고를 다녔던 학교 교정은 꽤 넓었다. 주변엔 나무들이 많았다. 아카시아 꽃들이 흩날렸고, 그 향기가 교실 전체를 펴져 나갈 때 우리는 선생님께 첫사랑 얘기 들려 달라며 졸랐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첫사랑의 기억이 없는 선생님들은 참 난감했을 것이다. 지어서 대충 둘러 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봄바람과 함께 불어 닥친 향긋한 꽃냄새도 저버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친구 여럿과 점심을 먹고 나무 아래 모여 수다를 떨며 아카시아 꽃 향기를 맡았다. 그 흔했던 향기는 바람만 불면 코를 간질이던 그윽했던 향기는 이제 나의 기억 저편에 있는 듯 아스라이 하다.


  그리고 나는 내 옆에 어엿이 서 있는 아들의 아기 때를 기억해 냈다. 모유를 먹여 키웠던 아기는 엄마의 냄새를 어찌나 잘 알아채는지 동구 밖에서도 그 냄새를 알아볼 정도였다. 냄새만으로 엄마인지 아닌지 보지도 않고 알아맞히니 얼마나 신통방통 기특한지 필시 내 새끼가 맞구나 했었다.


  이제 엄마 옆에 든든히 서서 무거운 짐도 대신 들어주고 말벗도 되어 주니, 이제 나도 아들의 기억 한편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시리면서 애잖다.


  오는 길에 아파트 입구 트럭 한가득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참외도 만 원어치 샀다. 참외 냄새도 그 주변으로 한가득이다. 입에 침이 고인다. 참외는 남편이 좋아한다. 한자리에서 몇 개를 깎아 먹는지 모른다. 좋아할 남편 생각하니 그 또한 즐겁다. 한 봉다리 참외를 손에 쥐고 한쪽 손은 아들에게 내어 주고 코 끝에 감도는 참외냄새와 언제 그칠지 모르는 꽃냄새를 맡으며 그렇게 걸었다.


  문득 나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향기로 기억되며 기억되길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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