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랫집 누수 공사를 2년 전 해주고 잘못된 공사로 인한 골머리를 아직도 썩고 있다. 하다 하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관리소를 찾아가 관리소장님을 만나 이런저런 하소연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공사 후 사모님 집에 남의 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거죠?
"네, 아주 못 살겠어요. 제가 이 지역 설비업체에 다 전화해 보고 알아보고 했어요. 다들 관리소에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화장실에 있는 세대배관은 짧고 대부분 공용배관이라면서요. 물이 모여 같이 내려가니 도면을 보며 알아보라고요. 이런 민원은 난생처음이래요."
나는 한층 격앙된 목소리로 우리 집 화장실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계속 피력하였다. 가만히 내 얘기를 들으신 소장님은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다며 그 길로 직원 몇 명과 함께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다른 집에서 물을 내려 줘야 소음을 들을 수 있다. 아침, 저녁은 시도 때도 없이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벌건 대낮에 모두 직장 가고 학교 간 마당에 물 내려가는 소음을 쉽게 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별로 친하진 않지만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윗집에 전화를 걸었다.
"저 사모님, 안녕하세요? 아랫집인데요. 지금 집에 계시나요?"
"네. 집에 있어요."
"죄송한데 혹시 변기 물 좀 내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무슨 일 있으세요? 잠깐만요. 지금 내려 드릴게요."
'우르르르르' 하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우리 집 화장실에서 들렸다. 그러고도 몇 번 더 확인했다. 아랫집에도 내려가 소음이 우리 집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가며 확인했다.
"사모님, 소리가 나긴 납니다. 아랫집 소음이 20이라면 사모님네는 40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거 동대표님들에게 회의 때 안건으로 제시해 관리소에서 원인을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20년 먹은 체증이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이 문제로 골치를 여간 썩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께 화장실 공사 해 주셨던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하실 거냐고 계속 추궁을 드렸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되려 큰소리를 치셨다. 그럼 소송해도 되겠냐고 나도 막무가내로 적잖이 큰소리를 친 상태였다. 그리고 여러 군데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해 비용이며 승소 가능성 등을 상담받기까지 했다.
소음의 원인만 밝혀지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분통이 터져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관리소에서 알아봐 주기로 하셨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며칠 전 아는 언니와 통화하며 이 얘기를 늘어놓았다. 자기 동생도 화장실 누수 문제로 맘고생 심하게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처음엔 동생도 당연히 해 주어야 하는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 배관이 공용배관이었다는 게 확인 돼 관리소에서 고치게되었다. 확인 없이 무조건 아랫집 누수를 윗집에서 고쳐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이런 시비가 다분한 일은 꼭 녹음을 하든 입증을 하든 남겨 놓아야 한다. 자기 경험상 입증해 줄 사람을 찾았을 경우 꼭 사례해 주어야 그나마 일이 좀 쉽게 풀렸다며 여러 가지 도움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바로 윗집, 아랫집에 커피 쿠폰을 하나씩 드리고 번거롭게 해서 죄송하다며 연신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번엔 원인이 잘 밝혀져 두 팔, 두 다리 모두 뻗고 자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도 화가 나 소송이니 뭐니 말했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사람 마음 한번 틀어지면 쉽게 처리될 일도 '너 한번 당해봐라' 하는 심보로 애 먹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존심이고 뭐고 일처리 잘 될 때까지 더럽고 치사해도 잘 참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