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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by 글쓰기 하는 토끼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이게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내가 살던 고향이 꽃 피는 산골이라니.

내가 살던 고향은 길가에 꽃은 피어 있었던 것도 같다. 지금은 식물 백과사전에나 나올 법한 맨드라미라든지 봉숭아, 제비꽃 등 드문드문 예쁘지 않게 동네 담벼락 밑에 피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리 부유하지 않은 동네에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셋방살이를 하며 살았다. 본디 대구에 본거지를 두고 계셨던 부모님은 무슨 연유이셨는지 이제 막 백일이 지난 나를 데리고 혈혈단신 지금 이곳으로 상경하셨다. 친인척 하나 없는 이곳에 정 붙여 살려니 여간 힘드시지 않으셨겠다.


아궁이에 연탄불을 때고 수돗가에 가 빨래를 하며 화장실은 밤에는 후레쉬를 가지고 다녔다. 수돗가는 넓었는데 장독대에 집집마다 담근 고추장이며 된장이 있었다. 장독대 주인들은 똑같이 생긴 항아리 뚜껑만 보고 누구네 집 항아리인지 단박에 알아챘다. 수돗가엔 빨랫줄이 많았다. 빨래를 하고 빨랫줄에 빨래를 널 때는 약간의 서열 다툼이 있었다. 그늘지지 않은 곳에 빨래를 널기 위해 많은 애를 썼던 것 같다. 한겨울엔 수도가 얼지 않도록 수도꼭지를 꽁꽁 싸매 놓았고 여름에는 수돗가 한켠에 놓여 있는 작두 펌프로 물을 끌어다 쓰기도 했다. 수압이 약해 펌프질을 암만해도 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나는 이 수돗가를 좋아했다. 따스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돗자리를 펴놓고 엄마는 가끔 나를 불러 나의 머리를 매만져 주시곤 하셨다. 엄마 무르팍을 베고 누워 스르르 잠이 들기 일쑤지만 엄마 냄새도 좋았고 무엇보다 마디마디 박힌 엄마의 거친 굳은 살의 손가락 질감을 나는 참 좋아했다.


겨울엔 이곳이 한량하기 그지없었다. 빨래를 하러 나오지도 않았다. 빨랫줄에 걸려 있던 안 찾아 간 몇 안 되는 옷가지 들은 차가운 바람에 나부끼며 으스스 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고 고드름이 얼기 시작하면 우리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 고드름을 따먹기 시작했다. 누가 제일 큰 고드름을 따는지 괜히 내기라도 할라치면 큰 고드름을 딴 아이가 뻐기는 건 따논 당상이다. 처마 밑에는 참으로 많은 고드름이 얼어 있었고 요즘과는 사뭇 다른 추위와 겨울바람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 다가오면 늘 사과와 귤을 한 박스씩 사셨다. 차가운 윗목에 놓아 놓고 겨우내 먹었다. 처음엔 달려들어 너도 나도 먹지만 한 이틀 지나면 그것도 시시하다. 썩어 나가는 것도 숱하게 많았다.


가끔 마을 논두렁 밭에 얼음이 얼면 동네 아이들은 죄다 나와 썰매를 타고 놀았다. 추워도 노느라 입김이 나폴나폴거려도 해가 질 때까지 집에 들어가는 아이는 없었다. 지금처럼 공부하느라 엄마가 나와 아이 뒷 목덜미를 잡아채서 끌려 나가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이 동네에서 20여 년간 살았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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