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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Dec 31. 2023

빨간 머리 앤

앤 너의 상상력이 부러워.


  아직도 앤이 내 귓가에 조잘조잘 대는 소리가 쟁쟁한 것 같다. 어쩜 이리도 말이 많은지.

꼭 우리 집 딸 같다. 우리 딸도 학교가 끝나면 나에게 곧잘 전화해 그날 있었던 일을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곤 다. 가끔 애는 말할 때 숨은 쉬는지 궁금할 때도 간혹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한 여자의 일생을 엿본 느낌이다. 이 책에서의 앤은 아직 젊지만 꼭 앤의 모든 것을 다 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이 무척 아려왔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달프고 힘든 유년시절을 견디어야 했던 앤은 공상과 상상만이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창구였다는 점이 무척 서글퍼 보였다. 그래서 입양되었을 때 얼마나 기뻐했을지도, 착오가 생겨 다시 고아원에 가야 하는 상황에 얼마나 비통했을지도, 그 마음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빨간 머리 앤을 만화로 보며 자란 세대이다. 문고로도 나와 있어 어릴 때 많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만화로도 보았고 책의 내용도 익히 알아 따로 도서를 구입해 읽을 생각은 안 했었다.

  하지만 내가 원작을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넷플리스에서 방영한 빨간 머리 앤 드라마를 보고 이다. 곧바로 제대로 된 책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선 길버트와 앤의 알콩달콩한 감정을 잘 묘사한 반면 책에선 앤은 길버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다가 결국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길버트와 친구가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저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생후 21개월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조부 밑에서 성장했다. 나고 자란 캐나다 세인트로렌스 만에 위치한 프린스에드워드 섬은 이 소설의 배경이 된듯하다. 이 책을 읽고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저자는 빨간 머리 앤을 완성 후 여러 출판사에 투고했지만 많은 거절을 당한다. 겨우 출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출간된 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여러 속편도 발표하게 된다.

  사실 그 후에 앤과 길버트의 다음 이야기도 무척 궁금하지만 난 나도 앤처럼 내 상상 속에 맡기기로 했다.


  이 책은 인상 깊은 구절들이 참 많았다.

  작은 '칭찬'이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충실한 '교육'만큼이나 좋은 효과를 내는 법이니까. -341p
  애를 키워본 사람이면, 모든 아이에게 빠르고 확실하게 들어맞는 양육법이란 없다는 걸 알 텐데. 한 번도 키워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수학 등식처럼 규칙에 대입만 하면 정답이 쉽게 나오는 줄 안다니까. 하지만 아이가 어디 산수 푸는 머리로 길러지나. -349p
아주머니.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그런 나쁜 점이 있는 거 같아요. 이제는 조금씩 알 거 같아요. 어릴 땐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소원들도 막상 이루어지면 상상했던 절반만큼도 멋지거나 신나지 않는 거 같아요. -407p


  그중에서도 난 이 구절들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는데, 아무래도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이라 공감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앤이 성장하면서 느끼는 어른이 되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과 어릴 때 가졌던 소망들의 다른 점이 극복되기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반면 그런 성장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충실히 자신의 삶을 아주 의미 있게 살아내는 앤의 모습도 나에겐 충분한 자극이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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