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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Jan 02. 2024

황정은 <파묘>


  모녀의 대화가 나와 우리 엄마의 대화 같았다. 우리 집은 작은집이라 본디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사 때 꼬박꼬박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제사 음식을 만들어 본 적도 제사상에 절을 한 적도 없이 자랐다.

  나는 결혼을 하여 처음 시댁에 가서 제사를 지냈고, 제사음식도 그때 처음 만들었다.

  시댁의 제사는 1년에 일곱 번이었고, 나는 제사가 있을 때마다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그러나 차츰차츰 제사가 합쳐졌고 지금은 명절에도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오직 한번 시아버님 제사만 지낸다.

  하지만 이 제사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지낼 자식이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파묘의 칠십넘은 어머니 이순일은 관절이 안 좋음에도 꾸역꾸역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가 성묘를 다. 이순일 어머니는 전쟁통에 부모님을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 자라다가 먼 친척집에 맡겨져 일손을 돕다 중매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다.

  결혼식에 오시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할아버지가 성치 않은 몸으로 낡은 솜두루마리를 입고 결혼식장을 다녀 가신다. 그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산 중턱에 묘를 만들어 묻어 드린다.


  나는 이순일 어머니의 마음을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 할아버지 무덤은 이순일 어머니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나라면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다.

  마음 둘 곳 없는 현실에서 오직 나에 대한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곳.

  하지만 이젠 나 아니면 무덤을 찾을 이도 제사도 지낼 이도 없는 곳 이기에 파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면 어찌했을까.


  파묘는 제사를 지내는 우리의 생활풍속에서 한 번쯤  해보았음직하고 아님 어쩔 수 없이 파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나의 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좋은 기회였.


  작가 황정은은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마더'가 당선되었다. 그 후 다수의 작품과 여러 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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