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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 Jul 29. 2023

집안일? 아니, 살림.

꽤 괜찮은 인생메이트_08


금요일 밤이면 남편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내일은 뭐 하지 말고 그냥 푹 쉬어.” 다음날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복작댈 내 모습에 대고 하는 말이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에게 집안일이란 정말 쉽지 않은 숙제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그냥 쉬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기에 의지로 몸을 움직인다.




고작 둘이 사는 가정에서의 집안일은 내가 하지 않으면 오롯이 상대의 일이 되어버린다. 그런 연유로 이것은 곧잘 다툼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더 많이 하는 쪽과, 더 잘하는 쪽은 답답한 마음을 담아 잔소리를 쏟는다. 덜 하는 쪽과, 덜 야문 쪽은 부러 그런 것이 아닌지라 억울함을 쏟는다. 그래서 이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사전에 분담표를 만들어 놓고 너의 일 나의 일 몫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라 평소의 조건을 벗어나 역할의 경계가 흔들리면 곧잘 섭섭한 마음을 낳는다. '나 같으면 이런 날은 대신해 줬을 텐데.' '아무리 -해도 그렇지, 나는 성실히 맡은 역할을 다 하는데 너는 아니네.'


우리 집에는 분담표 대신 집안일에 대한 무언의 룰이 있다. 먼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성실히 임할 것. 내 여력이 되는 날은 많이 하고, 안 되는 날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무리하지는 않되 다만 진실하고 성실한 자세여야 한다. 정말 한 끗 차이의 마음가짐이지만, ‘오늘은 좀 쉬고 싶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그럼 남편이 해 주겠지.‘라는 마음은 안 된다. 하지만 똑같이 그냥 쉬고 싶더라도 끝이 ‘오늘은 쉬고 다른 날 해야지.‘로 끝나는 건 괜찮다. 상대에게 미루지 않고 ‘내 일’처럼 생각할 것. 이것이 이 규칙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이 마무리 지은 집안일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칭찬뿐일 것.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은, 그 결과물 뒤에 있는 상대방의 성실한 마음-가정에 기꺼이 기여하는 귀한 마음을 비난하는 것과 같다. 만에 하나 조금 더 신경 써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사유와 함께 꼭 청유형으로 ‘부탁’한다. “여보, 이거 하느라고 너무 고생했겠다. 고마워. 그런데 혹시 이건 앞으로 이렇게 해줄 수 있을까? 그럼 내가 -하기 편해서 그래요.” 마지막으로 상대가 부탁하는 것은 기꺼이 들어줄 것. 우리는 애초에 서로에게 부탁하기보다 스스로 해치우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집을 비우는 동안 꼭 세탁되어야 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고, 청소를 하고 싶어 내내 신경이 쓰이지만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부담 없이 서로에게 부탁을 한다. “여보, 내일 이 블라우스를 입어야 할 것 같은데 세탁해 줄 수 있을까?” “여보,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시간 될 때 조금 부탁해요.” 그럼 부탁을 받은 사람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받아들인다. 그렇게 기꺼이 서로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집안일’이라는 단어보다는 조금 더 포괄적인 표현인 ‘살림’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집안에서의 일들-자칫 자질구레해 보일 수 있는 빨래, 설거지, 청소와 같은 것들의 묵직한 존재감과 그 행위에 담긴 고귀한 의미가 잘 담긴 단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집안 살림. 그것은 가족 구성원을 돌보는 일, 한 가정을 잘 보살핌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살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살림(housekeeping)인 동시에 살림(saving life)이기도 한 것이다.


집안 살림은 누군가 해야만 하는 귀찮은 일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잘 살도록 돕기 위해 사랑으로 보살피는 일이다. 비교적 체력이 약한 아내를 위해 설거지를 자처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옷을 언제고 입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세탁기를 돌린다. 때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휴식을 가지면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잘했어. 여보가 맘 편히 푹 쉰 것 같아서 너무 좋다.” 그리고 남편이 하루 종일 쉼을 가진 날에는 ‘얼마나 피곤하면 그랬을까.’하는 마음에 격려해 주고자 이렇게 말한다. “여보, 오늘 맛있는 거 해줄까?”


여유로운 토요일. 오늘도 부지런히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한다. 나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남편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을 확신하기에, 내 휴일을 이렇게 써도 아깝지 않다. 우리 사이에 ‘손해 보는 일’이란 없다. 언제고 같은 마음일 것을 확신하는 건 자만일 수 있지만, 적어도 그러기 위해 노력할 의사만큼은 확실하다.




집안 살림을 마치고 한결 말끔해진 집. 서로의, 서로를 향한 사랑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담겨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사랑이 가득한 집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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