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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 Jul 20. 2024

날개를 말리며

일상조각_07


최근 몇 달간 나는 그림도 그리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비어버린 시간에는 낮잠을 자거나, 누워서 휴대폰만 들여다보곤 했다. 정처 없이 이 앱, 저 앱을 들락날락거리며 의미 없는 정보들을 보고 또 봤다. 그러다 시시해지면 화면을 껐다가 일 분도 채 지나기 전에 다시 화면을 켜고는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하나도 이로운 점이 없는 완전한 시간 낭비라며 가장 싫어했던 그 행동을 내가 하루 종일 하고 있다니.. 문득문득 자괴감이 몰려들면서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휴대폰 화면이 꺼지면 이내 몰려오는 무료함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평소와 같이 시간을 죽이고 있던 어느 날, SNS에서 자극적인 사연을 하나 읽게 되었다. 사연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부러 갈등을 조장하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잔뜩 사용한 과장된 글이었다. 그 글 아래에는 정확하게 그 의도를 따라 여기저기 삿대질을 하고 있는 극단적인 댓글들이 잔뜩 달려 있었다. '에휴, 이 사람들아.. 현실을 살자. 현실을..' 그렇게 비난을 하는 순간, 문득 '정작 나는 지금 현실을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가짜인지 모를 이야기들과, 누군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이렇게 하루 종일 빠져 살고 있으면서, 나는 다른 양 이런 비난을 하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우선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한동안 글을 열심히 쓸 때는 늘 완충 상태에 가까웠던 노트북이, 얼마나 오래 방치되었던지 방전이 되어 있었다. 그 모양새가 지금의 내 모습과 꼭 닮은 것 같았다. 생각도 영감도 전부 방전된 채로 그저 까맣게 덩그러니 있는 것이 말이다. 뭐든 하려면 노트북도 나도 충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노트북에는 충전기를 연결해 두고, 그 사이에 나를 위해서는 차 한 잔을 우렸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는 달큼한 향이 나는 차 한 잔과 쿠키, 그리고 노트북이 나란히 놓였다. 내가 좋아하는 익숙한 풍경. 그 풍경을 보자 마음에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화면이 켜지고 - 그동안 브런치, 블로그 등에 새로 올라온 수많은 글들을 천천히 눈에 담기 시작했다. 손 끝에서는 타닥타닥 기분 좋은 타자소리가 울리고, 코 끝에는 향긋한 차 향기가 맴돌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무언가 끄적이고 싶다는 마음이 새싹 돋듯 작지만 힘 있게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면서 덜컥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당장 일상에 생긴 큰 변화가 있다면, 의미 없이 SNS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반 이상 줄어들었다는 것. 그 시간을 통해 받던 위로와 회복 그 이상의 것을 읽고 쓰는 행위로 다시금 충분히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대단한 것을 쓰고 그리지 못하더라도, 그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 것 만으로 충분히 기쁘다. 당장 아무런 결과물도 내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만 한다 해도 괜찮다. 이제 막 번데기를 찢고 나온 나비에게 날개를 말릴 시간이 필요하듯, 지금이 나에게 그런 시간이라 여기며 충분히 비행할 준비를 하기로 한다. 곧 예쁘게 마른 단단한 마음으로 멋지게 비행할 것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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